똑같은 바이러스인데… 한국서만 빠른 확산 왜?

입력 2015-06-07 22:55
국내에 유입된 메르스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기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와 유전자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보건연구원은 국내 유행 중인 메르스 바이러스의 염기설열이 2012년 발견된 첫 메르스 바이러스(EMC 표준주)와 99.55%, 55가지 메르스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 중 사우디아라비아 분리주와 99.82% 일치했다고 7일 밝혔다. 보건연구원은 2번 환자의 가래에서 바이러스를 분리·배양해 전체 염기 서열을 완성했다. 국내 바이러스학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네덜란드 의과학연구센터(EMC) 등의 정보를 기반으로 분석했다.

이 바이러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19명, 아랍에미리트에서 76명의 환자를 낳았다. 중동 이외 국가에서 2~3명 발생에 그쳤다. 똑같은 바이러스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60명이 넘는 환자를 만들며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 느슨한 방역망이 부추겼다?=전문가들은 급격한 확산의 배경으로 온난한 기후, 국내 병원 환경과 간병 문화 등을 지적한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대학 교수는 “메르스처럼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국내 확산 속도에 날씨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습도가 9%대로 낮고 낮 기온 40도를 웃돈다. 강한 직사광선이 내리쬔다. 반면 우리나라는 습도가 높아도 온도가 포근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메르스 바이러스는 습도가 낮고 온도가 낮을 때 활동성이 높아진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내부환경이 초기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메르스의 확산이 주로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그는 “의료기기의 오염 여부나 밀폐된 입원실 내부 압력 등이 바이러스 전파 매개체가 됐을 것이라 가정하고 실험 중”이라고 했다. 강철인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도 “병실 부족으로 환자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상황(삼성서울병원 사례)이나 좁은 공간에 환자와 간병인이 섞여 있는 간병문화(평택성모병원) 등이 확산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면역력이 약한 고령 환자가 많다는 점, 정부의 느슨한 방역망도 원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대유행으로 번지지 않을 것”=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운영하는 뉴스매체 ‘사이언스인사이더’는 5일(현지시간) 환자 1명이 수십 명에게 메르스를 옮긴 이번 사태를 두고 다양한 학설을 제기했다. 이종구 서울대 글로벌의학센터장의 주장을 토대로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 센터장은 “첫 환자가 머물던 병실이 환기·배기구도 따로 없는 밀폐된 곳이었기 때문에 에어컨이 작동하면서 바이러스 입자 밀도가 높아졌을 것”이라면서 평택성모병원의 에어컨 필터, 문고리, 화장실, 가드레일 등에서 바이러스 조각이 검출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열악한 환기시설이 비정상적 확산의 원인일 수 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의 피터 벤 엠바렉 박사(메르스 담당)는 “확보한 정보가 거의 없어 결론을 도출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조사를 통해 구체적 실태를 곧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독일 본 대학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박사(바이러스학)는 열악한 환기시설 하나로 한국의 메르스 확산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인체에서 나오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양이 환자마다 달랐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측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최초 감염자가 다른 환자보다 많은 바이러스를 내뿜었을 것”이라며 “고농도의 바이러스가 불량한 환기시설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대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미네소타대 전염병연구·정책 센터장인 마이크 오스티움 박사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병이 순간적으로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초동 대처엔 실수가 있었지만 제 경로를 찾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는 홈페이지에서 “메르스는 사람의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대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미나 심희정 홍석호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