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요즘 다시 주목받는 작품들이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대재앙을 다룬 영화 ‘감기’, 소설 ‘28’, 어린이책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등이 대표적이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이진희 편집주간은 7일 “손세정제나 마스크를 챙기던 사람들이 사태의 본질을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유정 작가의 ‘28’은 2년 전 출간돼 지금까지 20만부 가량 팔렸다. 메르스 이전까지는 ‘매우 잘 쓴 이야기’로 소비됐으나 메르스 이후에는 ‘대재앙 사태 속의 인간성을 묻는 작품’으로 재정의 되고 있다. 작가는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들의 대규모 살처분을 보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은 수도권에 인접한 가상도시 화양에 일어난 치명적 전염병 사태를 그린다. ‘빨간 눈 괴질’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원인불명의 병은 인간과 개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며, 발병하면 사나흘 안에 예외 없이 죽는다.
정부는 결국 봉쇄를 결정한다. 대통령 담화문이 발표되고 화양은 외부로부터 고립된다. “살고 싶다”면서 시청 앞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는 해산명령을 반복하고 도시를 탈출하는 이들은 군경에 의해 사살된다. 시민들은 공포에 몸부림치고 도시는 약탈과 살인이 난무하는 생지옥이 된다.
작가는 여기서 백신 개발이나 슈퍼히어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구원의 비밀은 비극과 고통에 공명하는 인간성에 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가, 바이러스 보균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 먼 자들의 도시’, 미국 추리작가 스티븐 킹의 ‘더 스탠드’ 등도 바이러스 전염병을 다룬 소설들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어린이 학습만화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1·2’는 서점들이 최근 전면 배치하는 책이다. 2008년말 출간된 책은 바이러스의 역사와 종류, 변이, 예방법 등을 다룬 만화로 지난해 에볼라 공포 속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 40만부가 팔렸으며 8개국에 수출됐다. 중국에서는 2013년 아동서적 분야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국내 번역된 ‘핫존’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다룬 논픽션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등이 주도한 27년간의 ‘에볼라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SF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 중에서는 김성수 감독의 ‘감기’가 단연 초점이 되고 있다. 2013년 여름 개봉 당시 300만 관객 동원에 그쳤으나 최근엔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감기’는 소설 ‘28’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도시 봉쇄를 선택하지만 ‘28’보다 한 발 더 나간다. ‘인간 살처분’을 얘기하는 것이다. 소나 돼지처럼 살처분된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나온다. 외국 영화 ‘컨테이전’ ‘브레이크 아웃’ 등도 화제가 되고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감기'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메르스 사태로 다시 주목받는 작품들
입력 2015-06-07 14:20 수정 2015-06-07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