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긴급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감염 의사 A씨가 직·간접적으로 다수 시민과 접촉했다고 발표한 것을 놓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사자인 A씨에게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와도 협의 없이 발표해 국민 불안을 더 고조시켰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던 A씨가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지난달 30일 오후 양재동 L타워에서 1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하는 등 불특정 다수 시민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A씨는 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스 감염 증상이 나타난 것은 31일 오전이고, 그 이전에는 의심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는데 병원과 저한테 단 한 번도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채 메르스를 전파했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서울시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A씨의 설명은 서울시가 발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시는 A씨가 지난달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됐고 30일 증상이 심화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A씨가 31일 오전 9∼10시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고 밝혔지만 A씨는 당일 심포지엄에는 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A씨는 “서울시가 만약 이런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려면, 환자 본인과 병원 측에 확인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아무런 확인 작업이 없었다. 최소한 내 얘기를 들어보고 발표를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A씨는 이어 “만약 서울시 주장대로 제가 29일부터 메르스 증상이 있었다면 과연 집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겠느냐”면서“그러나 집사람은 완벽히 음성판정을 받았다”고 서울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어 “제가 의사입니다. 감염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박 시장이 틀렸습니다. 저는 끝까지 박 시장의 책임을 묻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브리핑과 이후의 정보 전달 과정에서도 혼란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전날 브리핑 직전까지도 A씨에 대한 격리통보 날짜를 지난달 27일이라고 했다가 31일로 수정했고, 확진 날짜도 이달 4일에서 1일로 고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 서울시가 메르스 의심 의사가 최소 1500여명 접촉했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라동철 기자
<아래는 프레시안과 A씨 인터뷰 전문>
“박원순 시장이 틀렸다.”
4일 밤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 A(38)씨가 시민 1500여 명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사 A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의 기자 회견 내용에 대해 문제 삼았다. 자신은 보건복지부나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격리 조치를 당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31일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엄격한' 자가 격리로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켰다는 것.
<프레시안>은 박원순 시장의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서울대학교병원의 국가 지정 격리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A씨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A씨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약 30분에 걸쳐서 자신의 행적을 비롯한 여러 질문에 답했다. 전화기 너머로 간간이 기침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주장은 단호했다. "박원순 시장에게 분명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프레시안>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기자 회견의 사실관계를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A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이 인터뷰는 메르스가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나 의료진에게 2차, 3차 감염을 일으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본보기로도 읽을 수 있다.
"박원순 시장 기자 회견은 거짓말"
프레시안 : 방금 박원순 시장이 A씨가 시민 1000여 명 이상과 접촉한 사실을 밝히고 그 위험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의사 A : 거짓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서울시에서 발표한 저의 행적이 누구 입에서 나왔겠습니까? 모두 다 제가 질병관리본부와 세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던 것입니다. 코끼리를 직접 본 제 말이 맞겠습니까? 아니면 코끼리를 전해 듣고 묘사하는 서울시 말이 맞겠습니까? 사실 31일(일요일) 전까지는 제가 메르스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27일에 '14번' 환자와 응급실에서 접촉한 적은 있잖아요?
의사 A : 그 건부터 정리하죠. 우선 '14번' 환자는 제가 진료한 환자가 아닙니다. 그날 혈관의 일부가 막히는 색전증으로 수술이 급하게 필요한 환자가 응급실에 있었어요. 그 환자의 초음파를 보기 위해서 응급실에 약 40분 정도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 때 '14번' 환자가 누군지, 또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프레시안 : 그럼, 메르스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사실을 인지한 건 언제인가요?
의사 A :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내가 메르스와 엮이리라고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다만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단을 받아서, 응급실을 잠시 소독하느라고 폐쇄한다는 얘기를 듣고서 '와, 정말 무섭다!' 하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프레시안> 확인 결과 삼성서울병원이 응급실 소독 등을 한 날짜는 29일이다.)
"31일 이전에는 증상 나타나지 않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서울시는 경미한 증상이 29일부터 나타나 30일 증상이 심화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의사 A : 100% 틀린 얘기입니다. 질병관리본부와 인터뷰를 할 때도 분명히 말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했습니다. 특히 과로하면 기침이 심해져요. 31일 이전에는 제가 평소 고통을 받던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르다고 생각할 만한 증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29일도 정상적으로 병원 근무를 했어요.
프레시안 : 그럼, 30일(토요일)의 행적도 한 번 설명을 해 주시죠. 이날 오전에는 병원 대강당의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양재동에서 30분간 1565명이 참석한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했다면서요?
의사 A : 30일에 오전에 심포지엄에 참석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 없는 구석에 앉아 있다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 날 따라 공부를 하기가 싫더군요. (웃음) 저녁에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한 것도 맞습니다. 이동은 다 자가용으로 했고요. 모두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었어요. 당연하죠. 그 때만 하더라도 메르스 감염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프레시안 : 그럼,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처음으로 떠올린 건 언제입니까?
의사 A : 31일(일요일) 아침입니다.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27일 응급실에서 진료했던 그 색전증 환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격리 대상이 되어 있더군요. 그 때 '앗'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메르스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서 그날 회진할 때도 마스크를 착용했어요. 이건 동료 의사들이 증언해줄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취재 결과 31일 의사 A와 같이 회진을 돈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있었다.)
프레시안 : 그럼, 본격적으로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언제입니까?
의사 A : 그날 아침부터 가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예정된 심포지엄도 신청만 해놓고서 가지 않았어요. 서울시는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고 발표했죠? 아닙니다. 안 갔어요. 그리고 곧바로 자가용으로 집으로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쯤 자고 났는데,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열도 나는 거예요.
프레시안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의사 A : 삼성서울병원의 질병관리실에 전화했죠(오후 2시). 담당자한테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언급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증상을 설명했습니다. 1시간쯤 후에 다시 담당자가 전화를 해서 보건소에 즉각 연락하라고 권고하더군요(오후 3시).
프레시안 : 그래서 보건소에 갔습니까?
의사 A : 아니죠. 강남보건소에 연락해서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와 통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직접 검사를 하러 집으로 방문을 했더군요. 집에서 '엄격한' 자가 격리를 했죠. 그러다 오후 8시쯤 병원에서 확인 전화가 왔어요.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격리 병동을 내줄 테니 오라고 하더군요. 자가용으로 혼자서 격리 병동에 가서 입원했죠.
장담하건대, 31일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는 집사람 외에는 밀접 접촉한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의사예요. 감염병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도는 압니다.
"서울시, 부정확한 정보로 시민 혼란 부추겨"
프레시안 : 그래서 검사 결과는 언제 나왔습니까?
의사 A : 최종 판정은 2일(화요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서울대병원의 국가 지정 격리 병동으로 이동했고요.
프레시안 : 사모님도 검사를 받았죠?
의사 A : 다행히 완벽히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29일부터 증상이 있었다면, 과연 집사람에게 감염을 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프레시안 :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의사 A : 화가 납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한순간에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개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의사로서 양심을 걸고 박원순 시장이나 서울시가 주장한 그런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의사 A : 박원순 시장 같은 시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 또 서울시가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박 시장이나 서울시는 정작 부정확한 정보로 시민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엉뚱한 희생양이 되었고요.
기자 회견 전에 저한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전화 한 통 건 적이 없습니다. 물론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죠. 박원순 시장, 이번에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프레시안 :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몸도 불편하신데 인터뷰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틀렸다…책임 묻겠다”… ‘메르스 의사’ 반박
입력 2015-06-05 14:21 수정 2015-06-05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