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주요인사들은 4일 가난 때문에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발장은행' 출범 100일을 맞아 국회에서 기념식을 갖고 벌금제 개혁을 촉구했다.
'국회로 간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해 정의화 국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 새누리당 소속인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 등 여야 국회의원 3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가톨릭 추기경이 입법 사안과 관련해 국회를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장발장은행 측은 설명했다.
'일일 은행장'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한 염 추기경은 "(은행을 찾는) 이들의 사연 어느 하나하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절망에 빠져있다는 게 공통점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안락 추구와 무관심의 일반화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까지 미약하게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문을 인용,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그들이 다시 한 번 정의로운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나 사리사욕 당리당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가 있다"고 자성했다.
정 의장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장발장'을 만드는 일을 국회가 해야한다"며 "저도 재력이 좀 있으니 가담을 하겠다"고 후원 의사를 밝혔다.
문 대표는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서 강제노역을 받는 분들이 해마다 4만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돈 없는 분에게 몇십만, 몇 백만원은 생계비를 빼앗는 가혹한 형벌이다. 우리 사회의 장발장들을 외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인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이날 행사에 맞춰 '한국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현행 벌금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안에는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도입하고, 벌금의 납입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 납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앞서 새정치연합 김기준 의원도 피고인의 재산상황 등을 살핀 뒤 하루에 부과하는 벌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의 일수벌금제도 등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벌금제 개혁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장발장은행은 경미한 죄를 저질러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벌금을 내지 못하는 소년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시민단체다.
지난 2월 25일 출범 이후 지금까지 9차례에 걸쳐 155명에게 2억8천600여만원을 대출했다.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사회운동가 홍세화씨가 은행장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장발장 은행을 아시나요?” 벌금 못내 강제노역 연간 4만명...염수정 추기경 ‘일일은행장’
입력 2015-06-04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