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란 말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지성 일변도인 시대 흐름에 싫증을 낸 서구 사람들이 동양의 영성(힌두교의 요가, 불교의 선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다시 기독교에도 영향을 줘 그동안 잠자고 있던 기독교 영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결과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인은 물질 문명의 급속한 발달의 결과로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해가고 있지만, 이에 반비례하여 정신세계의 황폐화와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오는 정신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인들도 자기를 초월하고자 하는 갈망, 즉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보다 깊은 정신적 세계를 경험하고자 명상이나 요가에 많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교인들도 이런 흐름 속에서 역시 기독교적 영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풍부한 영성적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고독, 금욕적인 극기, 영적인 정화, 그리고 자기 통제를 강조한 사막 교부들의 영성과 내적 고요와 침묵을 강조하는 동방 정교회의 영성, 수도원적 경건과 개인의 내면적인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중세기 로마가톨릭의 영성,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회 내에도 경건주의, 청교도, 복음주의 등의 영성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그동안 영성이 인간의 영적인 것에 강조를 두었다면 오늘날 말해지는 기독교적 영성은 기독교인의 삶 전반에 관계된 전인적인 차원에서의 영성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년기에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던가 직장을 잃거나 이혼, 사별 등 충격적인 위기를 경험한 경우 사람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받게 되고 이러한 고통은 영적인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자기 보호막에 갇혀있는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영적성숙 즉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누림이나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갖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실제로 상담 중에 가장 많이 보는 모습 중의 하나는 “왜 나는 회심의 체험이 있고 신앙생활에 열정이 있고 많은 봉사를 하는데도 여전히 잦은 죄책감과 우울증, 열등감의 문제로 고민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이들은 더 깊은 영적 훈련을 위해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집회에 열심히 참석을 해도 여전히 그들 내면에서 들리는 “좀 더 잘해봐. 아직 충분하지 않아”라는 음성 때문에 영적인 좌절을 맛보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이런 감정은 낮은 자존감에서 오게 되는데, 이 낮은 자존감은 인간관계를 굴절시키고,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초래하고, 그리고 참된 신앙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왜곡되게 인식하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영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을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전인적 존재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바람직한 영성은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또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 노력하며, 그리고 성경말씀을 읽으면서도 또한 나의 잘못된 생각이나 편견을 깨닫고 바꾸어가는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적인 차원과 심리-사회적인 요소들을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과 교회들이 바람직한 영성훈련을 위해 나아갈 모습인 것이다.
박노권 목사(목원대 신학대학 목회상담학 교수)
[목회자칼럼] 오늘날 바람직한 영성의 모습
입력 2015-06-04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