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엽이형 홈런, 완전 사이다!”… 청량감 안긴 이승엽의 400호 아치

입력 2015-06-03 22:13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박찬호(42)가 그랬다. 이듬해엔 박세리(38)가 ‘맨발투혼’으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좌절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에 큰 위안을 줬다.

이번에는 프로야구에서 나왔다. ‘국민타자’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39)이 그 주인공이다. 이승엽은 3일 경북 포항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터트렸다. 1995년 프로무대에 데뷔 이후 21년 만에 달성한 한국 프로야구 통산 400호 홈런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첫 400호 기록이기도 하다. 일본에 진출했던 2004~2011년에 친 159개를 합치면 지금까지 홈런 559개를 날렸다. 일본 활동기간을 빼면 국내 13시즌 동안 평균 30.8개의 홈런을 때린 셈이다. 11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기록도 세웠다.

그의 400호 홈런은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 우리사회는 많이 어둡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사망자가 생기고 격리된 사람이 1300명을 넘어서면서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경제 사정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이승엽이 대기록을 작성했다. (카드대란이 있었던 2003년) 56호 홈런 때도 경기가 안 좋았다”면서 “지금도 마찬가지다. 메르스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큰데다 바쁘게만 살고 있다. 정치권이건 어디건 싸움만 하고 있다. 박찬호와 박세리처럼 이승엽도 스포츠로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있어 같은 야구인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400호 홈런이 더 의미가 깊은 것은 그가 역경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엽은 투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 전향했다. 이승엽은 당시를 떠올리며 “내 고집대로 투수를 했으면 평범한 왼손 투수로 뛰다 이미 은퇴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매년 피나는 훈련을 감내했다. 이승엽은 최고참임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경기가 시작되기 5시간 전에 야구장에 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승엽이 순탄했던 것 같지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는 등 여러 좌절을 겪고 최고의 선수가 됐다”며 “오랜 기간 동안 항상 최선을 다하고 좋은 기량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이승엽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엽의 발자취 자체가 한국 야구의 역사다. 1999년 22세 8개월 17일로 최연소 100홈런을 때렸고, 2001년 816경기·24세 10개월 3일로 최소경기·최연소 200홈런 기록을 작성했다. 2003년에는 1075경기, 26세 10개월 4일로 최소경기·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에서도 이승엽보다 어린 나이에 300홈런을 친 타자는 없다. 1999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 시대(54개)를 연 그는 2003년 56개의 아치를 쏘며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이승엽의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역 중 홈런 2위는 NC 다이노스 이호준(39·299개)으로 100개 이상 차이가 난다.

모규엽 기자, 포항=서윤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