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흥한 ‘블라터 왕국’이 결국 돈 때문에 무너졌다.
‘FIFA 부패 스캔들’의 몸통으로 지목된 제프 블라터(79·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전격 사퇴했다. 블라터 회장은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연방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3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회장 당선이 세계 모든 축구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 것 같다. FIFA는 대규모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몰레피 올리판트 남아공축구협회장은 2008년 3월 4일 제롬 발케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2010 남아공월드컵 조직위원회에 지원할 자금 1000만 달러(약 111억원)를 잭 워너 당시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회장의 관리계좌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블라터의 ‘오른팔’인 발케 사무총장이 남아공월드컵 개최지 선정용 뇌물자금으로 지목된 1000만 달러 송금과 무관하다는 FIFA의 공식 해명과 배치된다. 서한은 남아공 방송사가 공개했다. 미 수사 당국은 남아공 요청에 따라 FIFA 계좌에서 워너 CONCACAF 회장 계좌로 1000만 달러가 송금돼 표밭 관리에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이 서한이 ‘5선에 성공한 블라터 회장이 왜 지금 사의를 표명했나’라는 의문에 대한 답일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블라터는 돈을 앞세워 17년간 ‘세계 축구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그는 1998년 주앙 아벨란제(사망·브라질·FIFA 회장 24년 재임)의 뒤를 이었다. 당시 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당선이 유력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블라터가 표를 얻기 위해 돈을 살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블라터는 천문학적인 FIFA 수익금 중 일부를 회원국 축구협회에 ‘축구발전 보조금’으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지지 세력을 확장했다. 독재가 이어지면서 각종 스캔들이 확산됐다. 2018 러시아월드컵과 2022 카타르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뇌물이 오갔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블라터를 주시해 온 미 수사 당국은 지난달 27일 스위스와 공조해 FIFA 총회 직전 FIFA 집행위원 등 고위직 7명을 체포했다. 블라터는 5선에 성공했지만 수사가 급진전되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블라터는 새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는 회장직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AP통신 등 외신은 인터폴이 이날 잭 워너 CONCACAF 회장, 니콜라스 레오스 전 남미축구연맹(CONMEBOL) 회장 등 6명에 대해 적색수배를 발령했다고 보도했다. 적색수배는 범인인도를 목적으로 발부되는 국제체포수배서로, 대상자는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체포될 수 있다. 인터폴이 적색수배령을 내림으로써 수사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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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흥하고 돈으로 무너진 ‘블라터 왕국’
입력 2015-06-03 15:30 수정 2015-06-03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