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복면검사’ 가려서 빛나는 자유… 우리는 왜 가면에 열광하는가

입력 2015-06-02 17:41
MBC 캡처

당당해진다. 꾹꾹 눌러왔던 스스로의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해볼 수 있다. 답답한 가면을 쓰니 오히려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증명한다. ‘가면’이란 소재가 최근 TV를 관통하는 가장 ‘핫’한 코드로 떠올랐다. 왜 우리는 가면에 열광하는가.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 가면=음악성보다 외모나 퍼포먼스가 집중을 받으면서 선정적으로 흘러가던 가요계에 ‘계급장’을 떼고 나선 MBC ‘일밤-복면가왕’(일요일 오후 4시50분 방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5일 첫 방송 시청률이 6.1%(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17일 최고시청률 9.8%까지 치솟으며 주말 예능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는 그룹 인기 뒤에 가려졌던 노래 실력을 선보이는 기회로,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했던 실력파 가수에게는 ‘목소리의 힘’ 그 자체를 뽐내는 자리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방송분에선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배우 김슬기, 1990년대 활약했던 배우 안재모 등이 가창자로 나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출연했던 배우 홍석천은 “편견에 부딪혀 좌절한 사람들의 새로운 매력을 꺼내주는 프로”라고 ‘복면가왕’을 소개했다.

과거에도 ‘신비주의’를 내걸고 얼굴을 내놓지 않는 가수는 있었다. 제작진은 여기에 대결구도를 집어넣어 대중의 호기심이 극에 달하도록 했다. 노래라는 본질에만 집중하게 한 점은 기존 가수들에게 매력적인 소스로 작용해 박학기, 권인하, 진주 등 대중에게 잊혀졌던 명가수들을 다시 무대위로 불러들였다. 가수 이외에 연기자, 개그맨 등 재야의 노래 고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대로 희소성도 가진다.

지난 4월 종영한 KBS 예능 ‘마녀와 야수’의 경우에도 본질에 충실하자는 취지로 얼굴을 가렸다. 남녀 일반인이 특수 분장을 하고 데이트하는 짝짓기 포맷으로 젊은 층의 외모지상주의 세태에 경종을 울렸다.

◇답답한 현실을 푸는 장치, 가면=가면을 쓰고 통쾌하게 악당을 무찌르는 쾌걸 조로나 가면을 쓰면서 숨겨 있던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 ‘반칙왕’(2000), ‘복면달호’(2007)처럼 가면은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매개체로써 심심치 않게 등장해왔다. ‘반칙왕’을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KBS 드라마 ‘복면검사’(수·목 밤 10시)는 낮에는 평범한 원칙주의자로, 밤에는 복면을 쓰고 범죄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영웅의 삶을 담아낸 작품. 주상욱이 연기하는 하대철은 복면만 쓰면 힘과 정의감이 솟는 현대판 ‘각시탈’이다. 통쾌함과 권선징악의 단순한 구조 위에 인간적이면서도 영웅 면모를 갖춘 주인공의 양면적 모습이 스토리를 풍성하게 한다.

‘복면검사’의 전산 PD는 “얼굴을 가리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 행동을 하게 되지 않냐”면서 “이미 공고해진 체제를 바로잡는데 현실에선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복면같은 비현실적인 장치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동시간대 경쟁 중인 SBS 드라마 ‘가면’은 실제로 가면을 쓴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욕망을 쫓는 인간상을 선 굵은 스토리 안에 풀어낸다. 배우 수애는 사채 빚에 허덕이는 가난한 백화점 직원 변지숙과 대통령 후보 아버지를 둔 부유한 여성 서은하를 1인 2역으로 소화한다. 변지숙은 서은하 흉내를 내면 거액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인간 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욕망을 키워간다. 변지숙에게 가면은 숨겨왔던 비뚤어진 본성을 꺼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한상덕 대중문화평론가는 2일 “그간 대중문화가 과도하게 노출시켜 눈길을 끌려한 반면 가면 소재 콘텐츠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재미를 주고 있다”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자신의 실체에 다가가는 모습은 한껏 포장돼 있는 현대인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