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혼잣말로 내뱉은 욕설 모욕죄 아냐”

입력 2015-06-01 20:36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상대방을 지칭하지 않고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었다면 모욕죄에 해당할까.

김모(35)씨는 2013년 10월의 어느 날 술을 마신 뒤 밤늦게 지하철을 탔다. 그는 잠결에 실수로 옆자리에 앉은 A씨의 허벅지에 자신의 MP3를 두 차례 떨어뜨렸다. 이 일로 김씨는 A씨와 말싸움을 벌이다 급기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A씨는 김씨가 끝내 사과를 거부하자 역무실에 신고하기 위해 계단을 먼저 올라갔다. A씨보다 두세 계단 아래 서 있던 김씨가 갑자기 “이런 XX, X같네”라는 욕설을 내뱉은 건 그때였다. 당시 계단 주변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몇 명이 욕설을 듣고 김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A씨는 김씨가 자신을 공개된 장소에서 모욕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그는 “이런 XX, X같네”라는 말을 한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그렇다 하더라도 혼잣말을 내뱉었을 뿐이라 A씨를 모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한영환)는 김씨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런 XX, X같네’라는 말을 했고 당시 계단 주변에 여러 명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그가 피해자보다 두세 계단 아래 서 있었던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욕설이 구체적으로 김씨를 향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단순히 화가 나 욕설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모욕 정도도 일상에서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흔히 쓰는 수준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A씨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 언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