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400홈런도 불문율?”… 최선을 다해도 욕먹는 야구

입력 2015-06-01 14:23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지난 31일 서울 잠실구장. 이승엽(39·삼성 라이온즈)은 9대 3으로 앞선 9회초 2사 2루에서 타석을 밟았다. 앞서 네 번의 타석에서 안타와 몸에 맞는 공으로 두 차례 출루했지만 홈런은 없었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의 대기록을 노리고 있었다.

이승엽을 상대할 LG 트윈스의 투수는 신승현(32)이었다. 9회말이 남았지만 이미 6점차로 벌어진 승부는 사실상 LG의 패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신승현이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2점을 더 내줘도 삼성에 넘어간 승기를 빼앗기란 어려워 보였다.

삼성의 원정 관중들은 잠실구장의 3루석에서 이승엽을 연호했다. LG 유니폼을 입은 안방 관중들까지 외야석에서 글러브를 끼고 이승엽의 홈런 타구를 기다렸다. LG의 짜릿한 뒤집기보다 이승엽의 홈런을 기다리는 관중이 더 많아 보였다.

결말은 허무했다. 이승엽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신승현의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났다. 코스도 같았다. 양상문(54) 감독의 지시도, 포수 유강남(23)의 유도도 없었지만 고의사구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승엽은 1루로 무혈 입성했지만 후속타의 불발로 홈을 밟지 못했다. LG가 같은 회 말 점수를 만회하지 못하면서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논란이 불거졌다. 신승현의 고의사구를 놓고 야구팬들 사이에서 이견이 충돌했다. 1일 SNS에서는 “이승엽의 홈런도 기대했지만 신승현이 승부해서 이기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도망가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는 지적과 “투수는 단 한 점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투구한다. 위기에서 강타자를 피한 고의사구는 정당한 승부였다”는 반론이 나왔다.

케이블채널 스카이스포츠 중계방송에서 LG를 겨냥해 “실망스럽다”고 비난한 이효봉(52) 해설위원의 발언도 논란거리였다. 한 LG 팬은 “이승엽의 대기록은 프로야구사에 영원히 남겠지만 투수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다. 그걸 어떻게 강요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최근 연이어 불거진 야구계의 불문율 논란도 다시 불붙었다.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73) 감독은 지난 23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사실상 확정한 9회 무관심 도루와 잇단 투수 교체를 감행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과도하게 승부욕을 발휘하지 말자는 야구계의 불문율을 깨뜨린 김 감독의 승부수였다.

KT 선수단은 경기를 마치고 격하게 반발했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야구팬들의 이런 요구 속에서 점수차를 더 이상 벌리지 않기 위해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걸러낸 신승현을 향한 비난은 모순이라는 것이 야구팬들의 지적이다. 한 야구팬은 “프로야구에서 불문율이 왜 이렇게 많은가. 최선을 다하고 욕을 먹는 상황이 정상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승엽은 오는 2일부터 경북 포항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홈 3연전을 치른다. 포항구장은 가운데 담장까지 거리가 122m로 짧지 않은 편이지만 이승엽은 여기서 많은 홈런을 때렸다. 최근 3년간 포항구장에서 치른 20경기 가운데 9경기에서 홈런을 쳤다. 400홈런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롯데는 삼성과의 3연전에서 이상화(27), 구승민(25), 조쉬 린드블럼(25·미국)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