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대기록은 투수에게 부담이다. 이승엽(39·삼성 라이온즈)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이 그렇다. 이승엽은 지금까지 399차례 담장을 넘겼다. 한 번 더 넘기면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 그때까지 이승엽을 상대하는 모든 투수는 ‘폭탄’을 돌린다. 대기록의 희생자로 영원한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다음 사람에게 ‘폭탄’을 넘길 수밖에 없다. ‘폭탄’은 언젠가 터진다.
감독은 희생자를 결정해야 한다. 투수는 당일의 위기를 넘기면 그만이지만 감독은 다음 날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승엽의 대기록은 감독에게도 ‘폭탄’이다. LG 트윈스의 양상문(54) 감독은 지난 3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3연전 마지막 날 위기를 넘겼다. 이승엽은 홈런을 때리지 못했다. 마지막 타석인 9회초에는 LG 투수 신승현(32)의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포수가 앉아서 공을 잡았지만 사실상 홈런을 맞지 않기 위한 신승현의 고의사구였다.
양 감독의 손에 들렸던 ‘폭탄’은 롯데 자이언츠의 이종운(49) 감독에게 넘어갔다. 롯데는 오는 2일부터 경북 포항구장에서 삼성과 원정 3연전을 치른다. 중앙까지 거리가 122m로 짧지 않은 편인 포항구장에서 이승엽은 유난히 많은 홈런을 때렸다. 최근 3년간 포항구장에서 치른 20경기 가운데 9경기에서 홈런을 쳤다. 경기당 홈런 비율이 45%다. 이 감독의 출전 지시를 받은 투수가 이승엽에게 400홈런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감독은 “편하게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한화 이글스와 홈 3연전 마지막 날인 전날 울산 문수구장에서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물론 허용한 선수도 평생 이름을 올린다. 불명예로 생각할 수 있지만 기록에 일조했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삼성과의 3연전에서 이상화(27), 구승민(25), 조쉬 린드블럼(25·미국)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이상화의 품에 첫 번째 ‘폭탄’이 안겼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LG 양상문 → 롯데 이종운 “어? 어? 터진다!”… 이승엽 400홈런 ‘폭탄돌리기’
입력 2015-06-01 09:18 수정 2015-06-01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