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리1호기 재수명연장 사실상 포기” 가닥

입력 2015-05-31 18:00 수정 2015-05-31 21:28
고리 원전 1~4호기 전경. 사진 가장 오른쪽이 고리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우리나라 최고령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수명 재연장’ 신청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리 1호기는 ‘폐로’ 수순을 밟게 된다.

원자력 정책 관련 고위 관계자는 31일 “고리 1호기부터는 계속운전을 신청할 때 법적으로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해 반영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고리 1호기 계속운전 신청 시한까지 이런 부분들을 갖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리 1호기 계속운전 신청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에서 처음 ‘폐로’되는 원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부터 적용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에 따르면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을 위해서는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 이 내용을 반드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 보고서를 포함한 관련 서류 일체는 고리 1호기 운영종료 2년 전인 오는 18일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돼야 한다.

그러나 계속운전 신청 시한이 20일도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 주민수용성 조사를 위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개나 주민 열람 등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주민 공청회도 개최 14일 전에 장소와 일시, 주요 내용 등을 공고해야 하지만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나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다. 물론 개정안 부칙 특례조항에 올 6월까지 계속운전을 신청할 경우 주민의견 수렴을 이후 6개월간 보완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이 경우 더 강한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계속운전 신청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현재 고리 1호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단계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 평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계속운전을 신청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1978년 국내 최초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전인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1차로 설계수명 30년이 끝났다가 계속운전을 신청해 2017년 6월 18일까지 운영을 허가받았다.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폐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원전의 최종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새로운 차원의 갈등 조정과 정책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계속운전 포기가 한국 원전이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거나 한국 원전 정책이 여론에 휘둘린다는 식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면서 “폐로 기술 부문에서도 한국이 주도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신청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에서 첫 번째로 문을 닫는 원전이 나온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원전 정책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정부가 가져야할 부담도 크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1호기의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해온 상황에서 폐로를 선택하는 것은 ‘자기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1호기의 설계 수명이 완전히 종료되는 2017년까지 ‘폐로’ 관련 법·제도 정비를 마무리하는 한편 원전해체 등 폐로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 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경제성·주민수용성 고려, 갈등·불신 해소 계기 삼아야=원전 운영사업자인 한수원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금껏 ‘안전성에 문제가 없으면 원전의 계속운전(수명연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따라 2007년 고리1호기의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을 때만 해도 큰 논란 없이 10년간의 계속운전 신청과 허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두 번째 계속운전 신청 시기를 앞둔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노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도 극대화됐다. 계속운전에 대한 지역 여론은 여느 때보다 악화돼 있다. 이미 지난 2월 여당 대표이자 고리1호기가 위치한 부산 지역구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고리1호기는 부산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며 ‘계속운전 포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원전 안정성에 대한 법·제도적 요건도 크게 강화됐다. 계속운전신청 시 ‘주민수용성 조사’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법이 개정된 것도 같은 차원이다. 안정성 기준 강화는 노후 원전을 계속운전할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성’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미국 등 원전선진국에서 계속운전을 포기한 사례도 대부분 ‘경제성 부족’이 이유였다.

고리1호기도 경제성 문제가 논란이 된 상태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고리1호기가 2007년 7월~2017년 6월까지 1차 수명 연장을 하면서 사후처리비용 상승, 이용률 저하 등으로 3397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계속운전 신청 당시 한수원이 내놨던 순이익 예상치(2368억원)와 완전히 다른 수치다. 과거와 달리 높아진 안전성 보강 설비 투자비 등이 원인이었다. 고리1호기가 경제성 등을 이유로 계속운전을 포기할 경우, 정부나 한수원의 원전 경제성 평가나 안정성 강화 조치 등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제도 절차부터 기술력까지, 원전 폐로 준비해야=고리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포기가 가져올 실익은 크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폐로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도 미흡하다. 정재준 부산대 원자력안전연구센터장은 “고리1호기는 2호기와 붙어 있기 때문에 폐로를 하더라도 그 부지를 활용한다거나 그 지역 전체에 대한 원전 우려가 낮아지는 효과는 없다”면서 “폐로 기술 준비 등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이 고리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을 신청하지 않으면 고리 1호기는 2017년까지만 가동된 이후 영구 정지에 들어간다. 폐로 작업은 이로부터 5년 이내에 이뤄지게 된다. 2022~2023년부터는 원전 해체 작업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원전 해체의 경험이 없다. 원전 해체를 위해 필요한 38개 핵심기술 중 한국이 보유한 기술은 17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1년까지 나머지 핵심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정 센터장은 “고리1호기가 폐로결정이 난다면 외국 기술을 이전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이 경우 우리 정부가 원전 해체 작업을 최소한 주도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온라인편집=김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