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3시 이모(71) 할머니가 서울 중부경찰서를 찾았다. 서울 중구 공무원 박모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러 온 길이었다. 그는 “내가 경로당을 사적으로 이용했다고 거짓 소문을 내서 내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중구의 구립 A경로당 회장이다. 지금 중구는 예산 낭비를 들어 이 경로당을 폐쇄하려 한다. 매달 60만5000원씩 들어오던 구청 지원금이 끊긴 지는 1년이 다 돼 간다. 이 할머니가 고소한 박씨는 이 돈을 담당하던 사람이다. 태평한 세월을 보내던 이 경로당의 앞길이 이렇게 불분명해진 데는 길고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지난해 6·4지방선거 때 구청 측에 밉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당시 대한노인회 중구지회 이사회에 참석해 새정치민주연합 측 구청장 후보에 대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니 노인들에게 잘 해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호평했다. 선거에선 새누리당 최창식 구청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이 경로당은 이후 크고 작은 갈등에 잇따라 휘말렸다. 하루는 뒤엉켜 싸우던 노인이 말리던 이 할머니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다. 구청은 경로당 운영비 지원을 중단했다. 회원 간 내분과 시설 사적 이용을 이유로 들었다. 이 할머니가 경로당 3층을 사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실사를 나갔던 박씨는 28일 “당시 증거는 못 찾았다”면서도 “추측이랄까? 이 회장 남편이 3층을 계속 혼자 사용한 걸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남편은 와서 커피를 마시고 다른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는 정도였지 생활하는 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남성들은 여성들과 다른 층을 쓰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한 번 끊긴 지원은 재개되지 않았다. 이 할머니를 비롯한 경로당 노인들은 지난해 10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파문이 커지자 11월 4일 구의회가 ‘노인복지업무 부적격 공무원 인사조치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박씨 등을 징계하도록 구청장에게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박씨는 6급에서 5급(사무관)으로 오히려 승진했다.
그리고 이 경로당의 통폐합 방침이 나왔다. 구청은 지난달 A경로당을 폐쇄하고 그곳 노인들을 인근 B경로당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A경로당에는 5월 15일까지 운영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날이 지나자 전화부터 끊었다. 구청 관계자는 “그 지역 인구가 5000여명인데 구립 경로당 3곳이 직선거리로 200m도 안 되게 인접해 있어 예산 낭비”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왜 B경로당으로 옮겨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B경로당은 회원이 40여명으로 A경로당보다 10여명 많다. 반면 공간은 훨씬 협소하다. A경로당 윤옥현(79·여)씨는 “B경로당엔 거의 남자들만 모여서 200원짜리 화투를 친다. 장난삼아 10원짜리를 치는 우리로선 부담스럽다”며 “나는 여기 폐쇄하면 노인정 안 다니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그쪽에서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얘기하지만 행정부 입장에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창욱 최예슬 기자 kcw@kmib.co.kr
[단독] “서울 중구청이 경로당을 없애려고!” 노인들과 티격태격
입력 2015-05-28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