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인가? 독살인가? 내연남 살해 혐의 여성, 무죄 판결

입력 2015-05-27 17:56

헤어지자는 내연남에게 농약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여성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8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살인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박모(49·여)씨는 2011년부터 남편 몰래 피해자 A씨와 내연관계로 지냈다. 이듬해 남편에게 발각돼 집을 나왔다. A씨는 박씨에게 함께 살 아파트와 승용차를 사줬다. 하지만 박씨의 남편은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의 자녀들 또한 박씨를 반대했다.

결국 2013년 11월 4일 A씨는 박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날 두 사람은 A씨가 구입한 아파트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만취한 A씨는 집에 있던 농약을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며칠 뒤 숨졌다. 농약을 담은 페트병에서는 박씨의 지문만 나왔다. 검찰은 박씨가 술잔에 농약을 타 A씨가 마시게 했다고 보고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1·2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숨지기 전까지 “농약을 들고 간 일이 없으며, 농약인 줄 알면서 일부러 마신 것도 아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또 박씨에게는 가정까지 버리면서 A씨를 선택했다가 이별을 통보받은 데 대한 분노와 아파트·승용차를 지키려는 경제적 이유까지 살인의 동기가 충분하다고 봤다. 실제로 사건 다음날 박씨는 부동산중개소에 들러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았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박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사건 전에 가족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또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생선 썩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농약을 100㏄ 이상 마신 점은 죽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농약을 몰래 마시게 했다면 박씨를 향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어야 할 A씨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