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새로 맞은 아내가!’ 폐지 줍는 노인 등친 사기女

입력 2015-05-26 13:53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반지하 원룸에 혼자 사는 이모(69)씨는 지난 30년간 폐지와 병 등을 주워 팔며 생계를 이어왔다. 그의 아내는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수레를 끌고 하루 종일 화곡동 주변을 돌면서 이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하루 몇천원이었다. 그래도 분가한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과 젊은 시절 모아둔 돈 덕분에 넉넉하지는 않아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폐지를 줍던 이씨에게 정모(64·여)씨가 다가왔다. 정씨는 이씨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호감을 샀다.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지난해 7월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칠순의 나이에 인생 2막을 맞은 이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씨는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이모(61)씨에게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이씨를 꼬드겼다. 이씨는 불안해하며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정씨가 “부동산업자 이씨는 정부의 휴면자금을 끌어 모으는 일을 한다. 2억원을 투자하면 30억원을 벌 수 있다”고 부추기자 결국 한 푼 두 푼 건네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모아둔 예금이 바닥나자 선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2억2000만원을 넘겼다.

이때였다. 부동산업자라고 자처한 이씨는 그 돈을 받자마자 잠적했다. ‘아내’ 정씨도 함께 사라졌다.

아들과 함께 경찰서를 찾은 이씨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21일 경기도 성남에서 잠복 끝에 사기꾼 이씨를 붙잡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기 혐의를 인정했지만 정씨와는 무관한 단독 범행이라고 진술했다. 가로챈 돈을 모두 생활비와 사업 경비로 써버렸다고 주장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사라진 정씨는 아직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정씨가 사기를 목적으로 이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