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가 프랑스영화다. 프랑스영화는 할리우드영화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스타일과 컨벤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영화를 보노라면 아, 이건 프랑스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다못해 갱스터를 비롯한 범죄영화만 해도 장 피에르 멜빌의 ‘고독(Le Samourai)'이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와 다르듯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오늘날 프랑스영화, 특히 액션영화는 할리우드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화면만 보고 있으면 양자가 구별이 안 된다.
그런 할리우드도 두 손을 든 상대가 있다. 홍콩에서 시작된 중국영화다. 이소룡에서부터 성룡의 권격과 검술을 거쳐 주윤발의 쌍권총 총질로 이어진 중국영화의 액션이 할리우드까지 포함해 오늘날 전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요즘 할리우드의 액션영화들을 보라. 시대극이든 현대물이든 SF든 가릴 것 없다. 붕붕 날고 뛰는 중국 무술식 액션이 판친다. 대표적인 예가 ‘트랜스포터’ 시리즈를 통해 활극배우로 우뚝 선 중머리 스타 제이슨 스태텀의 영화들이다. 현란한 발차기를 위주로 한 그의 액션은 거의 이소룡이나 성룡 수준이다. 중국 무술배우들 뺨친다.
그 같은 스태텀의 싸움장면과 격투 시퀀스의 최고 걸작중 하나로 꼽히는 ‘007 위기일발’의 기차 침대칸 내 드잡이질을 비교해보라. 제임스 본드(숀 코너리)와 암살자 그랜트(로버트 쇼)가 좁은 침대칸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사력을 다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손에 땀이 밸만큼 현실감 있고 박진감 넘친다. 스태텀이 애크로바트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몸놀림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 나아가 그레고리 펙과 찰턴 헤스턴이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밤이 새도록 유장하게 싸웠던 ‘빅 컨트리(1958)’의 싸움장면과 비교해서랴. 이 영화를 떠올리면 요즘 할리우드 영화의 중국식 주먹싸움 장면이 일면 시원하기는 해도 얼마나 만화 같은지 단박에 느껴진다.
맨손격투 뿐이 아니다. 칼싸움 장면도 마찬가지. 앙트완(잘못된 표기로 인해 안톤으로 알려졌지만 안톤이 아니다) 후쿠아 감독의 ‘킹 아서(2004)’를 보자. 로마 군인들로 설정된 아서왕 휘하 원탁의 기사들이 희한하게도 중국식 검술을 구사한다. 중국영화에 나오는 중국 무사들과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존 부어맨 감독이 역시 아서왕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엑스칼리버(1981)’의 액션장면과 비교하면 완전 중국 영화다. 이처럼 와이어 액션이나 서커스 같은 몸놀림의 중국식 검술로 뒤덮인 최근 할리우드영화를 보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던, 중세 기사를 다룬 정통 할리우드 검술 활극영화들이 자꾸 떠오른다.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흑기사(Ivanhoe 1952)'나 찰턴 헤스턴 주연의 ’엘시드(1961)‘ 그리고 스튜어트 그랜져와 멜 페러의 펜싱솜씨가 기막혔던 ’혈투(Scaramouche 1952)'와 칼싸움 활극의 왕자 에롤 플린이 주연한 숱한 영화들.
총싸움은 어떤가. 원래 총싸움은 서부극에서 보듯 총기가 지천인 미국 할리우드의 고유 영역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던 것이 총싸움마저 중국액션에 의해 평정되기 시작했다. ‘영웅본색’을 비롯해 오우삼 감독이 이른바 ‘홍콩 느와르’에서 질리도록 써먹은, 경극(京劇)의 안무를 가미해 거의 발레 같이 보이는 총싸움 액션이 할리우드마저 삼켜버린 것이다. 총알 한발이면 될 것을 양손에 자동권총을 들고 공중을 날며 한 발 남김없이 쏴대는 과잉총질은 싸구려 홍콩영화에 심취한 비디오대여점 점원 출신 퀜틴 타란티노에 의해 ‘저수지의 개들(1992)’에서 아낌없이 원용됐고 그후 커트 위머 감독이 ‘이퀼리브리엄(2002)’이라는 영화에서 총싸움에 무용(안무)을 접목시켜 총질을 마치 검도 같은 ‘무도(武道)’로까지 극대화한 액션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홍콩식 총싸움 액션의 할리우드식 완성이라고나 할까.
중국식 액션이 요즘 영화의 대세라지만, 그리고 ‘할리우드 액션’이란 말이 ‘과장된 속임동작’을 가리키지만 중국식 액션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그리고 진지해보였던 옛 할리우드식 액션이 자꾸 그리워진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