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마친 노인은 어김없이 들고 온 플라스틱 통을 꺼내 음식을 담아갔다. 남은 음식을 싹싹 긁어 알뜰하게 챙기는 모습은 평범한 노인이었다. 생전에 모교 서울대에 450억원을 기부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 얘기다. 정 명예이사장은 지난 21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25일 “감사의 뜻을 전하러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그런 회장 사무실은 처음 봤다. 다 뜯어져 20년은 넘은 듯한 소파와 책밖에 없었다”며 고인의 모습을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처음 같이 밥을 먹은 곳이 정 명예이사장이 자주 가던 4000원짜리 칼국수 집이었다. 먹고 남은 걸 싸가면서 모은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셨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2002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재직 시절 정 명예이사장이 어려운 형편의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알게 됐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돈은 분뇨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풍성하게 뿌리면 고루 수확한다는 것을 평생 신조로 사신 분”이라고 했다. 5년 전 감사의 표시로 ‘신양 할아버지 감사 이벤트’를 기획했던 화학생물공학부 졸업생 문주용(30)씨는 “몇 년 전부터 후두암으로 힘들어하셨는데, 장학금 받은 학생들의 근황을 알아봐드리면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할 정도로 학생들을 끔찍이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추모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별세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신양 할아버지께서…’라는 글에는 200여명이 댓글을 달았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우리나라 고무산업 일인자가 됐다. 87년부터 모교에 기부를 시작해 820명이 25억6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신양 할아버지, “450억 기부하고도 남은 짜장면까지 싸가셨던 분”
입력 2015-05-25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