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4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74석). 국립극장이 젊은 극단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뽑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약 2주 동안 공연됐다. 몇 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 졸업 작품으로 발표됐던 창작 뮤지컬 ‘빨래’다.
‘빨래’는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서점 비정규직 직원 나영,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희정엄마 등 소시민의 일상과 사랑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당시만 해도 뮤지컬 넘버가 7곡밖에 안 되는 등 아쉬움도 있었지만 여느 뮤지컬과 달리 사회성 짙은 내용으로 주목 받았다. 덕분에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극본·가사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초연이 호평을 거둔 이후 ‘빨래’는 뮤지컬 넘버를 늘리고 스토리에 살을 붙이는 등 작품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리고 2009년 상반기 두산아트센터 공연부터 뮤지컬 넘버 18곡을 비롯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최종 완성했다. 이때 가수 임창정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덕분에 그동안 2~3개월 단위로 띄엄띄엄 공연되던 ‘빨래’는 2009년 7월 말부터 폐막일을 정하지 않은 오픈런 공연 중이다.
‘빨래’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제작사 씨에이치수박은 6월 10~14일 기념공연도 가질 예정이다. 출연 배우를 공지하지 않는 블라인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10주년 기념공연 6회분은 지난 8일 티켓 오픈 1시간 만에 전부 매진됐다. 지난 21일 대학로에서 ‘빨래’의 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 작곡가 민찬홍 그리고 씨에이치수박 대표 최세연을 만나 10주년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추민주는 “솔직히 ‘빨래’가 10년 동안 공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 작품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 민찬홍도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음과 열정으로 그런 어려움을 무사히 뛰어넘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알려진 사실들만 봤을 때 ‘빨래’가 거둔 성과는 놀랍다. ‘빨래’는 2005년 초연된 뮤지컬 ‘김종욱 찾기’(장유정 대본·김혜성 작곡)와 함께 한국 소극장 창작 뮤지컬 붐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3000회 가까이 공연되는 동안 50만명이 관람했으며, 고등학교 국어 등 교과서 3개에 소개됐다.
일본에서도 공연돼 호평을 받았다. 창작뮤지컬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에 이어 두 번째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2012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된 ‘빨래’는 한국 뮤지컬로는 처음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리뷰가 실렸으며, 이듬해 뮤지컬 전문잡지 ‘뮤지컬’이 선정한 ‘2012 뮤지컬 베스트 10’ 6위에 선정됐다. 올해 재공연된 ‘빨래’는 지난 2월 도쿄 공연 이후 교토 등 9개 도시 투어를 마쳤으며 올가을 나고야 등 8개 도시 투어가 예정돼 있다. 게다가 ‘빨래’는 최근 중국과도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내년 1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한국 버전 그대로 공연한 뒤 하반기부터 중국 버전으로 투어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빨래’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만만치 않았다. 젊은 창작자들의 동인제 극단으로 시작된 탓에 경영면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창기 투자를 받는 과정을 비롯해 오픈런 공연 이후에도 직원 관리 등 운영에서 허점을 노출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종욱 찾기’의 경우 창작자인 장유정과 김혜성이 CJ E&M에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공연권을 넘겼기 때문에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지만 ‘빨래’는 극단 단원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다보니 허술했던 것이다. 결국 한예종 재학 시절 만든 극단인 ‘명랑씨어터 수박’에서 2013년 법인인 씨에이치 수박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최세연이 대표를 맡으면서 제2의 도약에 성공했다.
극단 창단 멤버로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의상감독으로 활약해온 최세연은 “배우, 무대 디자이너, 연출가 등 극단 멤버들 각각의 일이 있다보니 누구도 경영에 전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법인으로 조직을 정비한 이후 흑자로 돌아서는 등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추민주는 “솔직히 3~4년 전만 해도 ‘빨래’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빨래’에서 다루고 있는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이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유효한 이야기인 만큼 20주년 기념 공연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씨에이치수박은 올해 10주년을 맞아 하반기에 신작 뮤지컬 ‘구부러져라! 스푼’을 공연할 예정이다.
한편 14일 10주년 기념 공연의 마지막 날 추민주와 민찬홍 그리고 최세연은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할 예정이다. 라이브 반주로 진행되는 이날 공연에서 민찬홍이 피아노를 치고 추민주는 하모니카를 불 예정이다. 최세연은 행사의 사회를 볼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뮤지컬 '빨래' 10주년]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일상과 사랑
입력 2015-05-24 18:00 수정 2015-05-28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