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전 독일총리 “고통을 줬는데 위안부라니…” 경기도의회 연설

입력 2015-05-22 19:06
21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 회관에서 강연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이동희 기자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oder·72) 전 독일 총리는 22일 일본의 과거 청산 문제와 관련해 “독일은 전쟁범죄에 대해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국제적으로 분명히 보여줬는데 일본의 경우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도를 처음 방문해 도의회에서 ‘독일 통일 및 연정경험과 한국에의 조언’을 주제로 연설을 한뒤 도의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이같이 말하고 “‘위안부’라는 단어 자체도 잘못됐다고 본다. 고통을 주고 위안부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통일과 관련해 “비용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만나야 하고 흩어진 가족이 만나야 한다”며 “가장 중요하고 정책의 우위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내놓으며 “통일 비용이 엄청나고, 고통을 수반한 구조개혁이 진행되더라도 한국 정치인들이 이에 대한 도전을 인지하고 있어 한국 통일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평화적으로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인권침해, 핵무기개발 등을 비판하면서도 “한국이 대화를 위해 북한에 손을 내밀고 있다. 북한이 안 잡고 후퇴하더라도 내민 손을 거두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슈뢰던 전 총리는 동·서독 통일 과정을 설명하며 “통일이 오면 구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독일 통일 이후 동독에 시장경제 도입, 국영기업 민영화, 낙후된 인프라 재건 등으로 통일에 따른 쇼크를 줄였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너무 늦게 실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이 구조개혁을 소홀히 해 성장둔화, 국제경쟁력 감소를 초래해 한때는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국가 부채가 5000억유로에서 1조1000억유로로 2배 이상 늘었다”며 자신이 추진한 개혁 프로그램 ‘어젠다 2010’을 설명하고 “고통스러웠지만 필요한 구조개혁이었다. 통일 직후에 실천에 옮겨졌어야 했다”고 역설했다.

그는 경기도 연정(聯政)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도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당을 초월한 연정을 한다고 들었다”며 “연정은 두개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자라서 하나의 성공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 존중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당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당이 국민 신뢰를 가져야 한다”며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을 때 정당은 당의 이해보다 국가와 국민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은 민주주의 수호와 국가안정을 위해 정당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학습이 있었다”며 “독일의 평화로운 국정은 이런 연정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40여분 동안 진행된 슈뢰더 전 총리의 연설에는 남경필 지사와 강득구 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경기도의원, 도청 간부공무원 등 300여 명이 경청했다.

앞서 슈뢰더 전 총리는 도지사 집무실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와 연정과 통일을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남 지사는 경기연정의 상징으로 집무실에 설치한 ‘연리지 나무’를 소개하면서 “여야가 연애하는 마음으로 늘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다. 약속을 잊지 않고 경기도를 방문해 감사하다”고 환영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해 남 지사가 베를린에 왔을 때 만나 경기도 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경기연정을 직접 보고 싶어서 경기도를 방문했다”며 “두 개의 뿌리가 만나서 하나의 나무를 형상화한 연리지의 콘셉트가 정말 보기 좋다. 대립보다는 소통이 우선이라는 점을 알았다”고 화답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경기도 방문과 도의회에서의 연설은 지난해 10월 남 지사가 독일을 방문해 슈뢰더 전 총리에게 독일의 통일경험과 연정에 대해 고견을 들려줄 것을 부탁하면서 성사됐다. 남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한·독의원연맹 회장을 지내며 슈뢰더 전 총리와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