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브루/R.H. 모레노 두란/문학동네
R.H. 모레노 두란(69)은 1980년대 이후 콜롬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영미권 소설 위주의 편식 탓에 콜롬비아 작가하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 정도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남미문학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다. 국내에 첫 번역된 두란의 소설이 6·25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게 이채롭다. 소설 제목 ‘맘브루는 전쟁에 갔다네’는 유명한 노래에서 땄다.
한국전쟁에는 유엔 산하 16개국이 참전했다. 민족상잔의 비극성에만 함몰돼 남의 나라 전쟁에 희생된 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측면이 있었다. 남미 유일 참전국으로, 5000명이 넘는 콜롬비아 병사들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운 이야기는 전쟁의 국제성을 새삼 상기시킨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빌린 “한국전쟁은 제3차 대전이었다”는 작가의 평가에 동의하게 된다.
역사학자 비나스코의 아버지는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해 전사한다. 소설은 비나스코가 콜롬비아의 공식 역사에 의혹을 품고 방한하고 참전군인 7명을 발굴해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가는 여정과 전투장면, 당시 정치·사회상에서부터 병사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리얼리티가 핍진하다.
도입부는 비나스코가 콜롬비아 대통령의 방한 수행단으로 초청되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현재 시점과 저 아래 바다에서 참전용사를 싣고 가는 에이킨 빅토리아호의 과거 시점을 중첩시킨다. 이어 비나스코가 인터뷰한 참전용사 7명의 삶을 그들의 육성으로 들려준다. 참전 사연은 다양하다. 보수당의 비호 아래 있는 무장단체 조직원과 술집에서 우연히 몸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감옥에 갈 처지가 되자 입대한 갈린데스, 학과 선택을 잘못한 걸 인정하기 싶지 않아 도망치듯 자원한 ‘먹물’ 야녜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을 뛰쳐나온 아르벨라에스, 아내가 자신을 속이고 사촌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대한 오르도녜스, 1948년의 콜롬비아 폭력사태 때 아버지와 두 형이 살해당하고 누이들은 강간당한 후 집안을 꾸려가다 병사로 지원한 폐냐…. 참전 말고는 탈출구가 없었던, 아물지 않는 개인적·사회적 상처를 안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 사회성 짙은 콜롬비아 세태 소설로도 읽힌다.
하지만 참전은 비극적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예컨대 갈린데스는 화천지구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람이 휠체어 신세가 됐다. 그는 결국 고국으로 가지 않았고 한국에서 스트립쇼 클럽 운영자로 살아간다.
한국전에서 수십 명의 콜롬비아 병사가 사망했다. 생존자 역시 이렇듯 일그러진 삶을 산다. ‘혈맹으로서의 의무’ ‘한국전쟁을 통해 콜롬비아 군대가 혁신됐다’ 등등의 통치자가 포장한 역사관에 소설은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그 총구는 또한 우리들의 망각을 향해 있기도 하다.
“그들의 선행은 비바람과 망각으로 망가져 버린 더러운 십자가 아래서 그들을 덮고 있는 땅뙈기만하다.” 송병선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책과 길]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삶… 아물지 않은 상처
입력 2015-05-21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