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폭풍, 초보전술에 ‘슈퍼 파워’ 미국 무릎 꿇다

입력 2015-05-21 09:03
라마디에서 철수하는 이라크군. 연합뉴스

“첨단기술이 자연의 힘과 순발력에 무릎을 꿇었다.”

이라크 전략요충지 라마디가 수니파 급진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에 장악되자 군사 전문가들이 내놓은 진단이다.

라마디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30분 거리인 전략 요충지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정부군이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이곳 주민 대다수는 반정부 성향의 수니파인데다 2006년 이라크 주둔 미군과 이라크 연합군이 테러 조직 알 카에다를 물리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모래폭풍 앞에 무용지물이었던 첨단 무기

IS의 전술은 용의주도했다. 현지 지형과 기상에 익숙한 IS가 맨 먼저 활용한 것은 모래폭풍을 전술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사막의 모래폭풍이 발생하는 시점에는 F-16, A-10, 드론 등 미 항공기들의 정찰과 공습이 지연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모래폭풍이 발생한 때는 항공기 출격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요행이 출격했다하더라도 장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모래폭풍이 잠잠해진 직후 미군의 공습이 재개됐지만, 이라크 지상군과 IS가 서로 뒤엉켜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어 공습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아도취 미국 vs IS의 뛰어난 순발력

라마디 함락 며칠 전까지 미군 고위층은 지속적인 공습, 이라크군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과 장비 지원, 치밀한 방어계획과 활발한 소통 등 미국의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면 성공적인 방어를 장담했다.

미군 고위층은 특히 이라크군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수니파의 대표적 근거지인 티크리트를 불과 얼마 전에 탈환하고 바그다드 동북부 디얄라주에서 IS 병력을 축출한 것에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그러나 특전단(그린베레) 요원들을 중심으로 한 미군 군사고문단의 훈련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 고질적인 종교 갈등과 이에 따른 명령체계 와해를 겪어온 이라크군은 IS의 출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경쟁이라도 한 듯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쿠웨이트 소재 연합군지휘센터 소속 일부 미군 장교들은 이견을 냈지만, 낙관론에 묻혔다.

미국이 자아도취에 빠진 사이 IS는 치밀하게 라마디로 침투했다.

미군의 공습이 있을 때면 노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예전처럼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전술에서 4∼5명씩 민간인 차량을 이용해 라마디에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수개월 동안 이런 전술로 라마디 외곽에 적잖은 병력 포진에 성공한 IS는 참호를 구축하고 작전에 필요한 화기와 탄약 등도 민간인 차량에 숨겨 반입했다.

그러나 IS는 서두르지 않고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 바로 공습이 사실상 마비되는 모래폭풍 시기가 닥치자 전광석화처럼 기습공격을 가해 오합지졸인 이라크군을 수월하게 제압하고 라마디를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

◇ 실상과 동떨어진 미국의 전략 실패 방증

미국 안보 전문연구소 수판그룹은 19일 낸 보고서에서 “라마디가 IS에 함락된 것은 이라크군이 대응 능력을 키울 때까지 미군이 공습으로 IS의 이동을 제한해 한정된 지역에 가둔다는 전략이 붕괴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수판그룹은 공습 봉쇄 전략이 실패한 원인으로 우선 IS의 세력이 공습으로 고립시키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한 점을 꼽았다.

수판그룹은 “IS는 이라크라는 상자 안에서 여전히 전략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고 있다”며 “공습 봉쇄 전략은 휘발유가 계속 공급되는 화재를 소화기로 끄는 격”이라고 미군 전략 실패를 지적했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