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건축물의 저승사자’ 흰개미 남산골 한옥마을 민영휘 가옥 습격 비상

입력 2015-05-18 19:50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목재건축물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흰개미가 발견돼 문화재당국이 비상이 걸렸다. 흰개미는 주로 땅속에서 기둥을 따라 이동하며 목재를 갉아먹어 목조건물에 큰 피해를 주는 곤충이다.

18일 오후 3시40분쯤 서울 필동2가 남산골 한옥마을 내 ‘관훈동 민씨 가옥’에서 서울시 문화재 담당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흰개미 피해 조사가 진행됐다.

이 가옥는 일제 때 부호로 꼽히던 민영휘(1852~1935)의 대저택 일부로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으나 1996년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한옥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목재가공과 황원중 임업연구사가 나무망치를 들고 가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목재부분을 두들겨 보거나 마루 밑에 고개를 들이밀고 흰개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앞서 지난달 30일 위탁운영사 직원들이 민씨 가옥 안채 문간과 윤씨 가옥 부엌행랑 외측벽에서 흰개미유시충으로 보이는 날벌레군이 있다고 신고했다. 당시 긴급방제를 실시해 날벌레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흰개미 서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날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황 연구사는 관리사무소 측이 수거해 보관한 날벌레를 살펴보더니 “흰개미가 맞다”며 흰개미가 발견된 곳으로 가 조사에 착수했다. 민씨 가옥 안채 문간 목재 일부에서는 흰개미가 빠져나온 작은 구멍이 발견됐고 나무망치로 두드리니 ‘퉁퉁’하는 소리가 들였다. 흰개미가 갉아먹어 속이 비어있다는 증거였다. 문간 안쪽 부역 천장 마루를 들어내기 마루에서 바닥에서 늘어진 실 같은 것이 보였다. 흰개미의 길이었다. 황 연구사는 “피해가 발생한 목재를 부분적으로 교체하고, 흰개미 서식 흔적이 있는 곳은 예방차원에서라도 약품처리 등 방제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한옥마을에서 흰개미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나무 속에 유충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추가 방제를 하고 훼손된 목재는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흰개미는 2억년 전 지구에 나타난 ‘살아있는 화석’으로 주로 4∼5월쯤 교미 등을 위해 무리 짓는 비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과거 서울 강서구 양천향교에서는 흰개미가 목재를 갉아먹는 바람에 신축된 지 3년 만에 부속 건물 한 동이 내려앉기도 했다. 전북 부안 내소사 지장암, 경남 양산 통도사 약사전, 전남 부위사, 전북 선운사, 충북 법주사, 강원도 오죽헌 등의 목조문화재들도 흰개미의 습격을 받았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운현궁에서 흰개미 서식이 확인돼 문화재청이 긴급 방제를 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