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나 스키니진을 입은 여성의 다리를 몰래 찍었다면 죄가 될까 안 될까. 법원이 이런 행위를 수십차례 한 2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봤다. ‘도촬’(도둑 촬영)에 대한 법원 판결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총 49회에 걸쳐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의 다리 등을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A(2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동의 없이 주로 다리를 촬영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개방된 장소에서 촬영된 것으로 대부분 지하철 건너편 좌석 정도의 거리에서 촬영한 것”이라며 “여성들이 선정적이거나 과도한 노출을 보인 경우가 아니고 촬영부위도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도촬’ 잣대는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 50대 남성이 마을버스에서 10대 여성의 치마와 허벅지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정면에서 촬영한 것을 두고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체 부위’라며 유죄로 판결했다. 반면 지난해 수원지법은 미용실 여직원 다리를 찍은 남성에 대해 “짧은 치마가 과도한 노출이라 보기 어렵고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하반신 전체를 찍었기에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성폭력 특례법’은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피해자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자 의도·경위, 촬영 각도·거리·장소, 특정 신체부위 부각 여부 등을 종합 고려해 실질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다소 엇갈리긴 하지만 판례가 축적되면 일관성 있는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레깅스·스키니진은 ‘수치심 유발’ 부위 아니다?
입력 2015-05-18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