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찾아 냉장고에 보관해라” 보이스피싱 후 절도… 영화 같은 ‘신종 범죄’

입력 2015-05-18 15:04

경기도 안양에 사는 70대 A모씨는 전화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이 “선생님의 주민등록번호가 도용됐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 집안 냉장고에 보관하라. 금감원 직원이 곧 방문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놀란 A씨는 바로 1억여원을 현금으로 찾아와 냉장고에 넣고 금감원 직원을 기다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보이스피싱 사기를 의심했겠지만 돈을 찾아서 보관하라고 해서 의심하지 못했다.

얼마뒤 한 남성이 A씨 집을 방문했다. 그는 목에 금감원 직원 신분증을 걸고 있었다.

그는 A씨를 택시에 태워 동사무소로 보내며 “빨리 주민등록증 먼저 재발급 받으라”고 한 뒤 “집안에 돈이 있으니 열쇠를 주면 지키고 있겠다”고 말했다.

A씨는 믿고 열쇠를 맡겼고, 남성은 곧바로 집안 냉장고에서 현금을 꺼내 도주했다.

안양동안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절도 범행을 접목한 신종 사기 수법으로 억대의 금품을 훔친 중국동포 심모(22·중국 국적)씨를 지난 13일 체포, 절도 등 혐의로 18일 구속했다.

심씨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이같은 수법으로 3억1000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0일 단기비자로 중국에서 입국한 심씨는 바로 다음날부터 범행을 시작했고, 11일부터 13일까지 단 3일간 안양, 부산 등에서 4건의 범행으로 1억8000여만원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심씨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주를 받아 입국, 조직에서 전화로 피해자를 속이면 거주지까지 찾아가 돈을 훔쳐 나오는 역할을 했다.

훔친 돈의 5%가량인 1200만원은 수수료로 챙기고, 나머지는 또다른 중간책에게 전달해 중국으로 송금시켰다.

경찰은 심씨가 2013년부터 9차례 입국한 사실을 확인, 여죄를 조사하는 한편 중간 송금책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인출과정에서 신고되거나 인출책이 검거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젠 절도를 접목해 돈을 찾아오는 신종 수법까지 등장했다”며 “비슷한 전화를 받더라도 절대 관련 공공기관에선 돈을 인출하거나 이체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니 관할 경찰서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