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용, 만년 2인자” 그리고 마지막 돌려차기… 오혜리, 세계태권도선수권 여자 73㎏급 정상

입력 2015-05-18 10:45
연합뉴스

국제대회만 나가면 작아지는 선수. ‘국내용’, ‘만년 2인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다니던 오혜리(27·춘천시청)가 마침내 웃었다.

오혜리는 18일(한국시간) 러시아 첼랴빈스크의 트락토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5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73㎏급 결승에서 중국의 신예 정수인(21)을 5대 4로 누르고 세계 정상에 섰다.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이 국가대표로 거둔 최고 성적이었던 오혜리로서는 처음 목에 건 금메달이었다. 이번 대회 한국팀에 4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오혜리는 전국체전 3연패를 할 만큼 국내 대회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 최종선발전을 앞두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바람에 제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없었다. 2013년 멕시코 푸에블라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대표 1차 선발전을 앞두고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2011년 경주세계대회 때는 글라디 에팡(프랑스)과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지만 심판들이 에팡의 손을 들어줘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오혜리는 이번 대회에 선수생활의 전부를 걸다시피 준비를 열심히 했다. 전날 8강에서 밀리차 만디치(세르비아)를 13대 4로 완파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만디치는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67㎏초과급 금메달리스트였다. 4강에서는 재키 갤로웨이(미국)을 꺾은 오혜리는 지난해 중국 쑤저우 월드그랑프리 우승자인 정수인을 결승에서 맞아 한번도 리드를 빼앗기지 않고 우승했다.

“아직 챔피언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그는 “결승전이 선수생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내년도 리우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서는 것이다. 그의 라이벌은 여자 67㎏급에서 올림픽 2연패를 이룬 황경선(29·고양시청)이다.

오혜리는 “나는 밑바닥부터 밟아왔지만 경선 언니랑 선의의 경쟁을 해서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겠다. 더 이상 2인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각오를 밝혔다.

이어 “어린 선수들이 많아져 ‘이제 나도 늙었나’ 싶을 때도 있지만 아직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