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나 보물 등 평면 도자기 그림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흙으로 캔버스처럼 빚어 산수화 등을 그린 다음 1300도의 가마에 굽는다. 잘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옛날에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 따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 따로 두었다. 국내 첫 ‘도화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오만철(52) 작가는 도공과 화공의 1인2역을 혼자 해내고 있다.
홍익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20년 전 도예에 빠졌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고미술 감정도 공부했다. 문인화와 산수화로 인기를 끌던 그는 본격적인 도화 작업을 위해 2012년 중국 도자기의 고향 경덕진으로 건너갔다. 그곳의 고령토는 그가 찾던 금맥이었다. 이 흙은 국내의 흙과 달리 찰지고 단단하다. 그곳에서 미친 듯이 작업했다.
백자 도판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백자항아리의 담박한 매력처럼 은은하고 정갈하다. 산과 강, 들과 돌, 꽃과 나무를 빚어내는 솜씨가 매우 정밀해 마치 화선지에 붓질한 그림 같다. “물레를 차면서 흙에 미치고, 수묵화를 그리면서 그림에 미치고, 도자기를 구우면서 불에 미친다”는 옛말대로 경지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작업이다.
화선지 위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도자기나 도자기판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이색적이다. 수묵의 발묵 효과까지 완벽하게 불로 구현해 도자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장르개척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기이기에 ‘도자기에 불멸의 이름을 새겨 넣은 사내’라는 별명이 붙었다.
작가는 불을 지피면서 철화자기의 모든 부분들이 수묵화의 번짐과 농담처럼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다시없을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철화진사는 농담의 차이를 내기 힘들다. 농담이 살아있는 철화백자 작업이 성공한 건 안료와 물조절 등의 물리적인 시간 싸움도 있지만 대학 때부터 문인화와 산수화를 주로 그려왔기에 자신이 있었던 덕분이다.
중국 경덕진의 가마는 우리나라의 가마온도인 1200도와는 달라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안료연구에 몰입해야 했다. 결국 중국 안료를 구입해 독자적으로 고온안료를 개발해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 조절이 문제였다. 안료를 가마온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물 조절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그 농도 차이를 찾아내자 색의 도판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새롭게 구현해낸 작품 50여점을 20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국내 첫 귀국전이다. 박인식 소설가 겸 미술평론가는 그의 전시 제목을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로 지었다. 흙과 불이 만나 스밈과 번짐, 붓의 놀림이 오롯이 살아있는 눈부신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는 의미다.
백자도판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마이산 절경을 그려 꿈속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앙상한 가지마다 눈꽃이 핀 설악산의 겨울 풍경은 정갈하고 담백하다. 또한 진달래의 분홍빛으로 물든 백자도판의 봄 풍경은 따뜻함과 순수함이 가득해 당장 봄 마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설렘을 안겨준다.
작가는 산, 들, 강, 바위, 나무, 야생화, 소나무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을 동양화풍으로 백자도판에 그려 넣었다. 그의 작품은 철화자기가 대부분이다. 불과 철의 조화를 극적으로 표현해 깊이 있고 묵직한 향기의 도화 작품이 탄생한다. 가마 속 온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철 성분의 염료가 백자도판에 아름다운 이미지를 남긴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작가들이 전통산수화를 청화로 제작한다면 작가는 한국의 현대 산수를 철화와 백자에 담아내고 있다. 중국 갤러리스트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지만 고국에서 먼저 신작을 알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그는 “한국의 도자회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02-733-1981).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 국내 첫 도화작가 오만철 20일~6월2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개인전
입력 2015-05-17 16:57 수정 2015-05-17 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