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지원 이진화 부장판사 논문, “아동대상 성범죄 합의했다고 감형 안돼”

입력 2015-05-17 14:10
50대 남성 A씨는 2년 전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다 심부름 가던 중학생 B양을 발견했다. A씨는 B양의 뒤로 다가가 목을 조르고 입을 막은 뒤 근처 빈집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A씨는 B양 측과 합의했다. B양 측에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상당한 돈을 공탁금으로 냈다면 감형요인으로 고려해야 할까.

법원 내 아동 및 소수자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젠더법연구회가 형사합의사건을 담당했던 판사 5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처벌불원 의사를 감형요소로 삼아야 한다는 답은 50명, 공탁금은 36명이었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범죄피해자가 민사 배상을 받기 어려운데 상당한 금액이 공탁됐다면 금전적으로나마 피해가 위자됐다고 봐야 한다거나, 성폭력범죄 처벌은 피해자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합의나 공탁을 감형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현직 판사의 논문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진화 대전지법 천안지원 부장판사는 ‘합의와 공탁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최근 논문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에서는 합의했으니 감형돼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를 당한 아동·청소년의 피해는 계량할 수 없는 정도에 그치지 않으며, 회복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합의에 이르게 된 시기와 경위, 피해자가 이에 응하게 된 과정 전반을 심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