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최만린과 중견 원애경의 이심전심 2인전 ‘원형의 동감’ 성북로 아트 스페이스 벤 6월11일까지

입력 2015-05-15 13:04
서울 성북구 성북로는 1970~80년대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다. 평화로운 주택가와 호젓한 거리 풍경이 서정적이고 그윽한 멋을 풍긴다. 성북주민센터 근처의 예술동네 가운데 성북로 49에 위치하는 ‘아트 스페이스 벤(ART SPACE BEN)’도 분위기가 좋다. 5층 건물의 1층 로비와 3층이 전시공간으로 활용돼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곳에서 ‘원형의 동감(同感·Sphere of life)’이라는 타이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생명의 근원적 이미지를 원초적인 원형으로 형상화하는 원로 작가 최만린과 중견 작가 원애경의 2인전이다. 원형의 ‘생명성’을 담아내는 두 작가의 작품은 작업 방식은 다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 각각 독특한 작업으로 이토록 동질성을 가진 2인전을 본 적이 있는가.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대표적 1세대 작가인 최만린의 작품은 ‘태’ 이후 ‘점(點)’을 거쳐 ‘O’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어렵게 생활하며 작업한 그의 작품은 그 연륜 만큼이나 원숙하다. ‘O’이란 물리적으로는 텅 비어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가득 차 있는 세계 그 자체이다. ‘생(生)’과 ‘기(氣)’를 불어넣는 작품이 웅혼하면서도 자유롭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 작업한 원형의 작품과 50년대 종이에 그린 드로잉 등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둥글기도 하고 사람의 웅크린 뒷모습 같기도 하고 막 솟아오르는 씨앗 같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는 원애경의 작품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스승과 제자처럼, 아버지와 딸처럼 작업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오랜 시간의 이심전심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최만린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미국 프랫 대학(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국내외의 숱한 전시로 대한민국 미술인대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후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원애경 작가는 프랫 인스티튜트 회화과를 나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감수성 표현이 돋보이는 원애경의 회화와 유리 입체작품 재생성(regeneration) 연작 역시 ‘생명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꽃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고 세포 이미지의 형상으로 살아 움직이고, 호흡하는 것처럼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담아냈다. ‘호흡하는 생명체’를 표현하는 그의 조각 작품은 얼핏 보면 하트 같다. 이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난 전시 때 한 엄마와 아이가 작품 관람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어머 하트가 너무 예뻐네”라고. 그러자 아이가 대꾸했다. “엄마는 이게 하트로 보여? 사람 엉덩이지.” 순간 전시장에는 아연 정적이 흘렀다. 이 얼마나 정확하고 순진무구한 반응인가. 그렇다. 엉덩이를 닮은 하트. 점잖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원리가 아닐까. 전시는 6월 11일까지 열린다(02-742-0788).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