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전 두산회장에게 카네이션 단 학생 인터뷰 “기여한 바 많은데 범죄자 취급 기분 나빠”

입력 2015-05-15 11:30

15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의 소환을 받고 출두하던 박용성(75) 전 두산그룹 회장을 향해 중앙대 학생 2명이 달려갔다. 11학번 여학생 유모씨가 갑자기 그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다. 함께 달려온 박모씨는 “박용성 이사장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박 전 회장은 막말 이메일이 공개되며 중앙대 이사장직을 최근 사퇴한 바 있다.

박 전 회장은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장 청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수많은 취재진에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학생들이 달려들어 카네이션을 건네자 박 전 회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네이션은 좀체 가슴에 제대로 달리지 못했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씨와 유씨는 이날 아침 일찍 흑석동 꽃집에서 보라색·분홍색 카네이션을 안개꽃이 감싼 모양의 꽃다발을 5000원에 샀다. 오전 9시30분부터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박 전 회장을 기다렸다. 스승의 날을 맞아 박 전 회장에게 꽃을 달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박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전 회장이 학교발전에 기여한 바가 큰데 한 순간에 범죄자처럼 비춰지고 있어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회장이 좁은 학교 내에 건물을 많이 지어주고 생활공간도 넓게 해 줬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이거(카네이션) 꽂고 조사 받으셨으면 했다”며 “(꽃이 떨어졌지만)우리 마음을 전할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이뤄진 뜻밖의 촌극에 일각에서는 이 학생들이 두산그룹에 취업을 시도한 상태가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박씨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긴 하지만 두산그룹에 지원한 적도 없고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의 말처럼 박 전 회장은 교지통합과 간호대 인수 등 중앙대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들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앙대 총장 출신인 박범훈(67·구속)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문제가 됐다. 박 전 수석은 교육부에 외압을 행사해 중앙대에 특혜를 주고 두산그룹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이 구체화돼 이미 구속된 상태다.

박 전 회장의 소환은 박 전 수석의 뇌물 혐의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박 전 수석에게 두산타워 임차권 분양에 따른 수익, 상품권 등 대가성 금품을 준 것으로 보고 이날 그를 불렀다.

취재진은 학생들 앞에 걸음을 멈춰서게 된 박 전 회장에게 “박범훈 전 수석에게 특혜 제안을 지시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조사실로 들어갔다. 바닥에 뒹굴던 카네이션은 박 전 회장만큼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