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3·1만세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2·8독립선언’의 진원지인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YMCA에 취재차 들렀다. 그런데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설명한 사람은 놀랍게도 일본인 다즈케 가즈히사(48) 실장이었다. 일본인으로부터 듣는 한국인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생생했고 큰 감동을 주었다. 일본인이 무슨 이유로 재일본한국YMCA에서, 그것도 한국의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하는 부서에서 일하는지 일본에 머무는 내내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던 차에 그가 한국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국민일보 본사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유능한 언론인이 되기 위해 제2외국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밤늦게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본어와 어순도 같고 아주 재미있는 한국어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1986년 일본 도쿄외국어대 조선학과에 입학했다. 방학 때마다 한국으로 2~3주일씩 무전여행을 왔다. 89~90년 2년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교환학생으로도 공부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한국민속촌에서 처음 사물놀이 소리를 듣고 매료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물놀이를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그래서 귀국 후 도쿄 시내에서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곳을 찾았어요. 재일본한국YMCA에서 하고 있더군요.”
대학생 3학년이던 89년 장구를 배우기 위해 재일본한국YMCA를 첫 방문했다. 이 방문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재일본한국YMCA 직원들은 장구를 배우는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권유했다. 자연스럽게 재일교포 등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의 한국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일본 히토쓰바시대에서 사회학연구과(한국사 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한 것이다. 그는 한국어, 한국역사, 한국문화 등에 조예가 깊은 한국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후 재일본한국YMCA 정식 직원이 됐다. 또 YMCA 산하에 있는 일본어학교 교장으로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본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YMCA에서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98년 재일본한국YMCA에서 도쿄YMCA로 2년간 파견됐을 때 지금의 아내(일본인)를 만나 2000년 결혼했다. 무엇보다 YMCA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뜻깊었다. 그는 YMCA에서 신앙을 가진 선배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문화를 접했고, 진로 연애 등 청년이 맞닥뜨리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신앙을 갖게 됐다. 현재 부인과 함께 도쿄에 있는 이케부쿠로 니시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냉각기를 지속하는 한·일 관계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낙관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이웃나라는 사이가 안 좋다고 하죠. 가까우니까 미워질 때도 있고요. 하지만 양국 국민의 교류는 여전히 활발합니다. 일본인이라고 한국에 대해 모두 아베 정부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인 대부분도 그렇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일본YMCA와 한국YMCA가 각각 실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원 프로그램’을 한·일 공동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양국의 화해를 위한 교계 차원의 연합활동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분열이 있는 곳에서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일을 양국 교계가 한다면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주민입니다. 물론 일본이 자신들에 의해 생채기가 난 한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한·일 크리스천이 힘을 모으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으면 합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3·1만세운동 불씨 지핀 2·8독립선언 알리는 일본인 다즈케 가즈히사씨
입력 2015-05-14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