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찰스 왕세자, 국정개입 논란 ‘검은 거미’ 서한들 공개

입력 2015-05-14 23:18

국정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영국 찰스 왕세자의 서한들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찰스 왕세자는 군 장비와 환경 문제부터 고고학, 학생들의 영양 문제, 동종요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일(현지시간) 찰스 왕세자가 지난 2004~2005년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와 산업부, 보건부 등 7개 부처 장관에게 보낸 27통의 서한을 공개했다. 영국 대법원은 지난 3월 가디언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찰스 왕세자의 서한을 정부가 정보공개법 절차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찰스 왕세자는 도시 디자인에 필요한 고고학 콘퍼런스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거나 바닷새와 불법 낚시에 대한 우려, 잉글랜드 서부 사우스 글로스터셔에 있는 학생들의 식사습관에 관한 문제 등 여러 분야의 사안에 개입했다. 2004년 9월 블레어 총리에게 전한 서한에서 찰스 왕세자는 “국방부가 이라크에 장비를 보내는데 노후한 해상작전헬기(Lynx)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교체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찰스 왕세자와 블레어 총리의 관계는 아주 가까웠다”면서 “블레어 총리는 심지어 약초로 만든 약을 사용하도록 권장해야 할지에 대해 찰스 왕세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찰스 왕세자는 총리에게 쓴 서한에서 “정보공개자유법이 존재하는데 당신은 친절하게도 내가 글을 남기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제안했다”면서 서한들이 공개될 경우에 대해 농담을 하는 ‘선견지명’을 보이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의 서한들은 알아보기 어려운 악필로 쓰여 ‘검은 거미(black spider)’ 서한으로 불려왔다. 영국 정부는 편지가 공개되면 찰스 왕세자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며 공개를 반대해왔다. 가디언은 “영국 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한 소송비용으로 40만 파운드(약 7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고 꼬집었다.

영국 왕실은 “왕세자가 더 나은 영국과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개인들과 조직들을 돕는 데 헌신해왔다”는 입장을 내놨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