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을 받은 100명 중 5명은 억대 연봉자였습니다. 서민들 가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대출인데 서민이 아닌 ‘부자’들이 대출을 받았네요. 31조가 시중에 들어온 만큼 집값은 오를 텐데, 집이 없는 서민들은 더욱 ‘내 집 장만’이 요원해질 전망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안심전환대출 실행규모 31조7000억원 중 전산입력 오류 등이 의심되는 5000억원을 제외한 31조2000억원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수혜자 중 신용등급이 1등급 이상인 사람은 절반에 가까웠고, 6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안심대출을 신청한 9830건 중 459건이 연간소득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였습니다. 연 소득 8000만원에서 1억원의 사람은 대출받은 사람 중 4.8%, 연 소득 5000만원에서 8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24%를 차지했습니다.
국가도 대출을 해주려면 신용 좋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나 봅니다. 수혜자 중 신용등급 1등급 이상도 4455건으로 45.3%에 달했습니다. 6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511건으로 5.2%였구요. 대출 받은 돈으로 또 다른 부동산 투기를 할지 아무도 모를 노릇이죠.
“살 사람은 없는데 집값은 안 떨어진다”
도시 근로자가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4월말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4억9999만원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서울 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320만원이었죠. 그마저도 단순노무 종사자 80%의 월평균 임금은 200만원 미만입니다. 자기 돈 모아서 아파트를 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죠.
31조가 풀렸다는데, 정말로 급전이 필요한, 사채까지 끌어들여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우리네 삶은 여전히 팍팍한데, 집값만 천정부지로 오른 꼴이죠. 부모로부터 받은 목돈이 없어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청년 근로자, 1인 가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홀몸노인들은 여전히 삶이 힘듭니다. 결국은 빚을 져 서울에서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폭탄은 돌아갈 것입니다. 한국의 소득대비 가계부채율은 163%로 OECD 최고 수준입니다.
“정부가 어느 정책을 펼치던, 당신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31조가 넘는 세금으로 운용되는 대출이 결국은 고소득층에게 혜택을 줬습니다.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집 사려면 대출은 당연히 껴야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정책” “애초에 서민은 관심에도 없었다. 한국판 모기지 사태를 늦추기 위한 고육지책” “대출금 갚기 위해 집을 싸게 내놓아야 집값도 떨어지고 부동산 경제도 살 것 아니냐. 27평 아파트가 5억 하는 게 정상적이냐? 빚 안 질거면 집 사지 말라는 소리”라는 혹평이 잇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서민의 가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세금으로 고소득자와 고액 주택 소유자들에게 혜택을 줬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청춘 남녀들은 맞선을 볼 때 부모를 동행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철수랑 헤어져. 철수는 평생 벌어도 서울에 집 한 채 못살걸. 우리 부모는 운이 좋아 안심전환대출로 아파트 샀어. 30년 동안 조금씩 갚으면 되니까 같이 살자”
‘병 맛’이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네요.
◇안심전환대출이란?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변동금리로 이자를 갚던 대출을 싼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대출. 원리금을 장기간에 걸쳐 분할 상환할 수 있다. 대출 조건은 9억원 이하의 주택을 가진 이로 최대 5억원을 대출해준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격렬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부자들만 재미 본 안심전환대출의 비극
입력 2015-05-13 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