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4시40분쯤, 방금 지나쳐온 공원 정자에 한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는 서울 문일고 3학년 김태휘(18)군은 귀가하는 길이었다. 정자에서 멀어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걸어온 언덕길을 되돌아 뛰어 내려갔다.
허공에 가늘게 그어진 녹색 빨랫줄이 정자 바로 앞까지 가서야 드러났다. 지붕 아래 들보에서 수직으로 뻗어 내려온 줄은 50대 남성의 목을 죄고 있었다. 남자는 손이 파랬다.
김군은 줄에 매달려 축 늘어진 몸을 두 팔로 안아서 들어올리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30대 남성이 다리를 들어올렸다. 줄을 잘라야 했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 중 한 명이 가방에서 가위를 꺼내 건넸다. 김군은 가위로 줄을 끊고 남성을 의자에 눕혔다. 셔츠를 잘라내고 벨트를 풀었다.
비로소 119구급대가 도착했다. 남자는 숨을 쉬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구급대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자영업을 하는 김군의 아버지(48)가 집에 있다가 아들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정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군거렸다.
김군은 11일 경찰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송호림 금천경찰서장은 “나이 어린 학생의 적극적 대처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김씨는 “누구나 그런 상황이 닥치면 똑같이 해낼 것”이라며 “아들이 첫날은 그 상황이 자꾸 떠올라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저 장면, 섬뜩하다” 정자에서 목맨 아저씨 구한 고등학생
입력 2015-05-11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