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유증’ 영국 혼란·고립 가속화되나… 내우외환 커질듯

입력 2015-05-10 17:06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의 로스 도우뎃 칼럼니스트는 9일(현지시간) 이번 영국 총선 결과에 대해 ‘영국의 자살’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총선 결과를 놓고 쏟아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앵글로색슨족과 켈트족의 고질적인 민족감정이 반영된 총선 결과인 데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문제와 스코틀랜드의 영연방 탈퇴 문제 등으로 인해 앞으로 영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고질적인 민족감정성 투표=영국은 런던이 있는 잉글랜드 지방과 잉글랜드 북부의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서쪽의 웨일즈, 별도 섬인 아일랜드 등 4곳이 연방을 이룬 나라다. 이 중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와 켈트족의 스코틀랜드는 수백년간 앙숙 관계다. 원래 잉글랜드에 켈트족이 살았는데, 앵글로색슨족이 이들을 북부로 쫓아내고 이곳을 차지해서다.

지난 7일 총선서 압승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유세 과정에서 이런 민족감정을 한껏 자극했다. 그는 “노동당이 승리하면 (노동당과 연정 대상인) 스코틀랜드독립당(SNP)에 휘둘릴 것”이라고 부추겼다. 켈트족이 영국을 좌우할지 모른다는 캐머런의 연설에 앵글로색슨족이 똘똘 뭉치면서 보수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캐머런의 그런 발언은 동시에 켈트족을 자극시켜 SNP가 스코틀랜드 59개 지역구 중 56곳에서 승리하게 해줬다.

◇맞물려 있는 브렉시트와 스코틀랜드 독립=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선거 결과로 영국이 대영제국(Great United Kingdom)에서 소영제국(Little England)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면서 “캐머런 총리가 그 소영제국의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2017년까지 브렉시트 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공약 때문에 영국이 점점 더 유럽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특히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은 경제·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영국의 위상을 깎아내릴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BBC방송 등 현지 언론들은 SNP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재추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첫 국민투표에서 독립 찬성이 45%에 머물러 독립이 무산됐지만, 캐머런 정부에 대한 반발이 더욱 확산된 지금은 독립 목소리가 한층 고양돼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EU 잔류를 원하고 있어 브렉시트 논란이 커질수록 독립운동 열기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양쪽은 정치적 이념도 달라 보수당은 ‘작은정부’와 긴축재정 정책을 더욱 강화시킬 방침인 반면 좌파인 SNP는 추가 긴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사사건건 부딪힐 전망이다. 긴축 정책은 노동당 등 다른 야당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주말 사이 캐머런 총리 관저 앞에서는 200여명의 시위대가 긴축 정책을 성토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선거제도 개편 목소리도=캐머런 총리는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과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 등 4명을 유임하는 등 차기 내각 인선에 착수했다.

이번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은 총투표수의 12.6%인 388만표를 얻었지만 의석은 단 1석만 가져갔다. 반면 SNP는 145만표(득표율 4.7%)를 얻었는데 스코틀랜드 지역 59개 선거구 중 56개를 싹쓸이했다. 영국에선 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를 한 후보만 당선되고 비례대표 제도는 없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제도 보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여론조사위원회(BPC)는 보수당이 압승한 총선 결과를 줄곧 보수당과 노동당의 초접전으로 예측했던 ‘엉터리’ 여론조사 기관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