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역사학자들, 일본의 역사왜곡 경고… 아베 종전 70주년 담화 압박

입력 2015-05-06 19:12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공개서한’의 형식을 빌려 집단적으로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를 왜곡하지 말라고 촉구함에 따라 8월 2차 세계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할 예정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이번 서한은 올해 종전 70주년을 맞아 이 전쟁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역사를 추구하는 일본의 용기 있는 역사학자들과의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작성됐다.

서한에 서명한 역사학자들은 20세기에 있었던 수많은 전시 성폭력과 군 주도의 성매매 사례 중에서도 ‘위안부’ 제도가 방대한 규모와 군 차원의 조직적 관리, 그리고 일본에 점령됐거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지역의 어리고 가난하며 취약한 여성을 착취했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일부 역사가가 이를 부인하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붙잡힌 채 끔찍한 야만행위의 제물이 됐다는 증거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적이 없다”는 아베 총리와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세계 역사학계의 확립된 컨센서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8월에 나올 아베 담화 등에서 본질을 교묘히 회피하고 ‘두루뭉술한’ 사과를 하려는 것으로는 아시아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번 공개서한에 서명한 학자가 187명에 이르는 데다 세계 역사학계를 주도하는 석학들이 포함돼 상징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허버트 빅스(미국 빙엄턴대학), 디어도어 쿡·하루코 다야 쿡(미국 윌리엄 패터슨 대학), 존 다우어(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가 우선 눈에 띈다.

빅스 교수는 2001년 태평양전쟁 전후의 일본 현대사를 다룬 ‘히로히토와 근대일본의 형성’이라는 저서로, 쿡 부부 교수는 1992년 위안부와 관련된 구술이 담겨 있는 ‘전쟁 중인 일본’이라는 저서로 각각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하버드와 프린스턴, 시카고, 스탠퍼드 등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해 에즈라 보겔(하버드대), 피터 두스(스탠포드대),아키라 이리에 하버드대학 교수 등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동아시아 전문가들이다.

이번 공개서한 작성을 주도한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 세계 학자들의 시각을 일본 정부에게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