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바링고빈스’에 담긴 엘리야스의 꿈

입력 2015-05-04 17:20

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 ‘융·건릉’(사도 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의 묘) 입구 맞은편에 커피전문점 ‘바링고빈스 1호점’(대표 이명남)이 문을 열었다. 케냐 북서부 해발 1900m에 있는 경기도 2배 면적의 ‘바링고’ 지역 이름을 딴 상호다.

“바링고빈스가 ‘엘리야스의 꿈’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는 NGO 월드베스트프렌드(WBF) 차보용(47) 대표는 개점 행사에서 그의 이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칸고고 엘리야스 체롭. 바링고 출신의 엘리야스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한국교회가 바링고에 설립한 에벤에셀 아카데미(고교 과정)에서 꿈을 키우던 학생이었다. 한국 여성 사역자인 김옥실 선교사의 도움으로 그는 2007년 강남대 컴퓨터공학과 장학생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열아홉 살 때였다.

그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WBF를 통해 장애인 영어캠프 등 자원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강남대를 졸업하고 LG전자 해외사업부에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의 기쁨도 잠시, 인턴교육을 마친 그는 귀국 2주일을 앞두고 경남 통영의 섬마을 두미도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다가 돌연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그리고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2012년 8월 7일,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저도 나눠주고 싶어요. 케냐도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훗날 내가 사는 마을에 컴퓨터를 가르치는 학교도 짓고 싶습니다.”

평소 자신의 바람을 스스럼없이 말하던 엘리야스의 꿈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엘리야스의 시신을 바링고 현지로 운구했던 차 대표는 장례예배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앞길이 창창한 20대 젊은이가 죽었으니 슬픈 장례식이 될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정반대였습니다. ‘이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장례예배 설교 메시지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WBF는 구상 끝에 엘리야스 고향인 바링고에 ‘IT(정보통신) 센터’를 설립키로 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ODA(국가개발협력사업)로 이뤄진 센터 건립 사업에는 인천 성민교회와 온누리선교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한·아프리카 친선협의회 등이 뜻을 함께 했다. 2013년 말 완공된 엘리야스 IT센터는 컴퓨터 900여대와 IT 전문 강사 등을 갖췄다. 지난해 말 현재 연인원 1만여명이 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컴맹’에서 벗어났다.

올 초부터 WBF는 공정무역 커피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바링고 지역에 커피 농장만 550개에 달하는데, 현지 커피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겁니다. 이 역시 케냐 국민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는 엘리야스의 꿈이기도 합니다.” 차 대표 얘기다. 커피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해서는 벤자민 체보 바링고 도지사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다. WBF는 후원 업체 등과 더불어 현지에서 생산된 커피 14t(8500만원)을 포함해 총 1억6000만원어치를 수입했다.

나이로비에서 이뤄지는 커피 경매가(1㎏당 1500~2000원)보다 10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이 수익금은 바링고 지역 커피농가 주민들로 이뤄진 협동조합을 통해 배분된다.

엘리야스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3년이 채 안된 사이에 바링고에서는 한층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정도라고 한다. 도청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한국관’이 들어섰고, 여기저기 태극기도 걸려 있다. 조만간 새마을운동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WBF는 이제 물이 귀한 현지 주민들을 위해 ‘정수(淨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중략)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엘리야스의 꿈은 지금도 열매를 맺고 있다.

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