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18.옛날 영화 포스터

입력 2015-05-04 15:24
지난번 복싱영화 ‘상처뿐인 영광’을 다루면서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화가 국내 개봉했을 당시인 1958년에 만들어진 포스터였다. 영화연구가 정종화씨가 엮은 ‘외국영화 포스터’라는 책(범우사, 2001)에 실려 있었다. 거기에 쓰인 광고 문구. ‘감정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는 박력과 긴장에 넘친 화제의 비정영화!! 처참한 드라이 텃취!’

어차피 광고 카피라는 게 과장 투성이이기 마련이지만 옛날 영화 광고 카피의 ‘허장성세’랄지 ‘과대포장’은 참으로 극적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정씨의 책에서 50~60년대 것 몇 개를 골라본다. 당시의 문안은 대개 한자로 쓰여 있지만 이는 전부 한글로 옮겼다. 단 일본식이 농후한 사람들의 이름 표기와 틀린 맞춤법, 어법은 당시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이 영화들을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연배들이라면 달콤 씁쓸한 추억에 젖을 수 있으리라.

△‘시정에 넘쳐흐르는 정감과 가슴을 파고드는 로맨티시즘으로서 찬연히 빛나는 대명작!’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마뷘 르로이 감독/로날드 콜맨 그리아 가-슨 주연, 1942제작/1953 개봉

△‘꽃의 파리(巴里)에 피에 얽히는 사랑!! 웃음의 무대에 태풍을 갖어오는 필사의 복수검(復讐劍)!--‘혈투’(Scaramouche) 죠지 시드니 감독/스츄워드·그렌쟈 에리나·파-카 주연, 1952/1954

△‘언덕위의 밀어(密語)도… 해변의 포옹도 안개처럼 사라져간 애수의 비가(悲歌). 애절한 추억이 몸부림치는 비련의 여인!’--‘모정’(慕情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헨리 킹 감독/윌리암·홀덴 제니파·존스 주연, 1955/1956

△‘평화냐 전쟁이냐! 백인과 인디안의 기구한 운명을 묘사하여 비통하게 심금을 울리는 서부 대거편(大巨篇)!!’--‘피묻은 화살’(Broken Arrow) 뗄마·떼-비스 감독/제임스·스추워-드 제프·챤드라 주연 1950/1956



△‘영화사상 불후의 대낭만편! 완벽의 배역에 호화찬란의 대화폭(大畵幅)을 전개!!--‘노틀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 장 드라노와 감독/지나·로로부리지다 안소니·퀸 주연 1956/1957

△‘일(一)여인을 둘러쌓고 전개되는 두 탈옥수의 몸부림치는 욕정! 지옥의 고뇌와 사랑의 투쟁--‘악인은 지옥으로‘(Les Salauds Vont En Enfer) 로벨 옷센 감독/마리나·브라듸 안리-·뷔달 주연 1956/1957

△‘우슴과 눈물이 명멸하는 인간감정의 압권! 결사적 탈출!! 숨막히는 스릴과 써스펜스가 육박하는 포로생활의 실태!!--‘제17포로수용소’(Stalag 17) 빌리·와일더 감독/윌리암·홀덴 옷토·프레밍거 주연 1953/1957

△‘인간의 애증과 육친의 상극을 묘파한 감동의 최고거편!!--’에덴의 동쪽‘(East of Eden) 에리아·카잔 감독/세기의 신인 제임스·띤 쥬리-·하리스 주연 1955/1957

△‘서부극의 진수를 이 일편에 담은 최고거편!! 숨막히는 박력과 감동! 이대 권호(拳豪)의 우정과 처절 서부사에 유례없는 최대의 대결투!!--‘OK목장의 결투’(Gunfight at OK Corral) 죤·스타제스 감독/버-트·란카스타 카-크·다그라스 주연 1957/1958

△‘참신한 영화수법과 근대감각의 최첨단을 독보(獨步)하는 도취의 명작--‘파리의 연인’(Funny Face) 스탄리·도-넨 감독/오-드리·헾번 후레드·아스테어 주연 1957/1958

△ ‘인간의 피를 빠라마신 유황도의 모래!! 귀신까지 울었다는 세기적인 유황도의 참극 드디어 영화화! 사상 공전의 전쟁영화초거편 --’유황도의 모래‘(Sands of Iwo Jima) 아-란 드완 감독 죤·웨인 주연 1949/1958

△‘전세계를 들끓게 하는 4대신인이 한데 모인 공전의 청춘애정편! 약한자 그대는 핸섬·보이. 젊음이 넘쳐터지는 4대 청춘스타의 매력!--’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Faibles Femmes) 미셸·보와롱 감독 자크리-느·사살 파스칼·푸티- 미레-느·드몬죠 아란·드란(알랭 들롱) 주연 1958/1960

△‘생과 사! 조국과 명예! 콰이강에서 격돌하는 광기어린 인간갈등과 전쟁심리--‘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데빋드·린 감독/윌리암·홀덴 알렉·기네스 주연 1957/1962



그럼 다음의 광고 카피는 어떤 영화일까. 모두 다 맞춘다면 당신은 대단한 영화광이다.

①처열(凄烈)! 열사(熱砂)의 북아(北阿)전선에서 독군(獨軍) 롬멜부대를 격파하는 과감한 미군전차병혼(魂)! ②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아름다운 왕녀의 즐겁고 애닯은 청춘의 애수!! ③호반에 솟아있는 신비한 고성(古城)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 소녀의 슬프고 애끓는 청춘 애련(哀戀)의 서정시 ④화려한 이국(異國)왕궁 속에서 싻튼 정열의 무드! 현란(絢爛)호화의 왕궁을 수놓은 사랑의 찬가 ⑤웅대무비! 처절한 남북전쟁 속에 피고 진 부정애(父情愛)의 극치! 비루(悲淚)! 감동! 박진! 스릴! 당대 명우 스츄아-드의 필생의 열연으로 완성된 영화사상 희유(稀有)의 금자탑!

정답:①사하라전차대(Sahara) 죨단 코다 감독/함프리·보가드 주연, 1942 제작/1954 개봉 ②로-마의휴일(Roman Holiday) 윌리암 와일러 감독/그레고리-·펙 오-드리 헾버-ㄴ 주연, 1953/1955 ③ 나의 청춘 마리안느(Marianne de Ma Jeunesse) 주리앙 듀비비에 감독/ 마리안느·홀트 피에르·봐베크 주연 1955/1956 ④ 왕과 나(The King and I) 월타 랑 감독/데보라·카 율·부린너 주연 1956/1957 ⑤ 셰난도(Shenandoah) 안드레·V·막라그렌 감독/제임스·스츄아-드 주연 1965/1966



어떤 것은 희한한 한자말이 동원되는가 하면 마치 시같은 문구도 있지만 갈수록 허풍의 정도가 심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앙리 베르뉴이가 감독하고 안소니 퀸 비르나 리시‘가 주연한 ’25시‘쯤 되면 ’전인류를 통곡케한 불후의 명작‘이 되고, 로버트 와이즈 감독에 스티브 맥퀸과 캔디스 버겐 주연의 ’산파브로‘는 ‘인류가 이룩한 불후의 금자탑’으로 묘사된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술책이지만 ‘사기성이 농후한’,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내놓고 ‘이것은 거짓말입니다’라고 하는 듯한 정감어린 옛날의 영화광고가 그립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