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환자가 ‘네 살’ 뇌사아 장기 6개 이식받고 새생명을 얻었다

입력 2015-05-04 14:08
네살박이 뇌사자의 소화장기 6개를 한꺼번에 이식받고 새 생명을 얻은 신모(2)군이 퇴원에 앞서 의료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국내 의료진이 두 살짜리 아기에게 네 살 박이 뇌사 상태 어린이의 소화장지 6개를 한꺼번에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이명덕, 장혜경, 김지일, 김상일, 박재명 교수팀은 지난해 11월 ‘위장관 거짓막힘증’으로 생명이 위험한 신모(2) 남아에게 4세 뇌사아의 소화기계 장기 6개를 이식,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데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환자는 수술 후 5개월째에 접어든 이날 현재 건강을 상당히 회복, 지난 1일 퇴원했다.

이명덕 교수는 “신군이 당분간 소량의 정맥영양제와 수액보조투여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 역시 곧 종료하게 된다”며 “앞으로 1년 뒤 장루 복원 등의 마무리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힘든 고비는 사실상 다 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출생 후 약 70일경에 뚜렷한 원인도 없이 갑자기 장 폐쇄증상이 나타난 신군은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2014년 가을, 가까스로 위장관 거짓막힘증이란 진단을 받게 됐다.

위장관 거짓막힘증이란 소장의 운동성이 약해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 및 통과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진행하여 장애범위가 전체 위장관으로 확대되며, 이로 인해 영양결핍 뿐만 아니라 정체된 창자속 음식물의 부패와 세균번식, 감염으로 폐혈증 등 합병증 발생위험이 높아져 생명을 잃게 되는 병이다.

따라서 환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제 기능을 못하고 망가진 소화기계 장기(위, 십이지장, 췌장, 비장, 소장, 대장 등)를 떼어낸 후 정상적인 다른 사람의 장기로 대체 이식하는 수술밖에 없다.

검사 결과 신군의 소화 장기는 간만 온전할 뿐 무려 6개 장기를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가기가 어려운 것으로 진단되었다. 신군은 즉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이식대기자로 등록됐다.

신군이 앓고 있는 질환 자체가 워낙 흔치 않은 병이었고 두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복강 크기에 딱 맞는 공여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린이 기증자가 극소수인 국내 실정으로 볼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기적이 2014년 11월 25일 그야말로 ‘기적처럼’ 이뤄지게 됐다.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4세짜리 숭고한 장기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신 군과 신체크기가 맞아 장기를 한 덩어리 채 옮겨서 갖다 놔야 하는 신 군의 다장기이식에 더 없이 적절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판명됐다.

먼저 혈관외과 김지일 교수가 기증자의 장기를 적출했다. 간 이식을 제외하는 변형 다장기이식을 위해서는 내장동맥부터 상장간막동맥까지 대동맥에 붙인 채로 그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혈류를 유지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간, 소장-췌장 및 신장의 혈관을 아주 정교하게 나눠야 했다.

김 교수는 “더욱이 기증자의 심장과 폐, 간은 타 기관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신군의 고장 난 장기들은 이명덕 교수가 적출했다. 온전한 간을 보호하면서 기타 소화기관들을 잘라내야 했기 때문에 보통 이식보다 더 복잡하고 정밀함이 필요한 수술이었다.

이어 총 5군데의 혈관 문합, 담도 연결을 포함한 위장관 부분 5곳 문합, 배설을 위한 장루 2곳 설치, 급식용 장루관 1곳 조성 등 총 13가지의 중요한 이식수술이 18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이식 후 혈류가 이식편에 다시 개통되어 이식된 장기들이 살아나기까지 걸린 냉각허혈시간은 5시간 30분으로 집계됐다. 이식된 소장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최대 허용시한(8시간)보다 2시간30분이나 앞당긴 기록이었다.

신군은 이 수술 후 진균성간농양과 폐렴 등 감염증과 일반 고형 장기이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면역거부반응인 ‘이식편대숙주반응’까지 겪는 등 3번이나 위중한 고비를 넘기고 5개월여 만에 건강을 완전히 회복, 퇴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신군은 현재 하루 식사 필요량의 3분의2 이상을 입으로 섭취하고 있다. 신군의 엄마 정모(38) 씨는 “아이가 정말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장시간의 수술 견뎌내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우며 다시 한번 아이에게 소중한 장기를 기증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병마와 싸우는 다른 환아들도 우리 아이를 보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