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나,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라는 제목으로 여러 장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결정장애가 있다고 밝힌 글쓴이는 비가 온 이날 자신이 겪은 황당한 사연을 풀어냈다.
그는 “대학 졸업하고 오랜만에 고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며 “흔색 블라우스 정장에 어울리는 신발이 고민이었다”고 운을 뗐다.
캔버스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는 그는 여러 종류의 신발을 늘어놓고 지인들에게 코디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캔버스를 신을 거라면 차라리 삼선슬리퍼를 신어라”는 지인들의 말을 듣고 대학 신입생 때 산 하이힐을 꺼내 신었다. 그는 “오랜만에 구두를 신었더니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걸음걸이가 첫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안쓰러웠다”라고 불편해 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걸음마다 휘청거렸지만 꽤 만족스러웠다”며 내심 흐믓해 했다.
그러나 불안 불안하던 그의 구두에 문제가 생겼다. 내리막길을 걷다 왼쪽 굽이 부러졌다.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 못했다고 전했다. 곧이어 그녀를 아연 실색케 한 일이 벌어졌다. 급한 마음에 구두를 갈아신기 위해 집으로 향하다 다시 오른쪽 구두마저 굽이 부러진것, 그는 “구두를 질질 끌면서 멈춰섰는데 갑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라고 적었다. “왜 하필 이날이죠?”라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구두를 들고 걸었다. “스타킹 차림으로 실연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를 했다”며 “비도 오고 오늘따라 거리에 행인들도 많아 무척 창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순간 비 오는 하늘에 감사했다”며 “우산이 제 얼굴을 가려주었기 때문이죠”라고 불행 속 긍정을 말했다. 이어 그는 “나태하게 살던 나에게 하늘이 깨달음을 주려는건가 싶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던 발걸음이 고딩시절 등교할 때 속도를 되찾게 해주었거든요”라며 감사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여러분! 오래된 구두는 버리세요”라고 자신이 얻은 교훈을 적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네티즌들은 “뭐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위로감은…” “순간접착제 사서 붙였던 기억이” “슬리퍼 사 신고 갔어요”라며 격하게 공감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