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자살할 수 있다”… 저시력자의 돌보기 체계화 시급

입력 2015-05-04 14:05

전맹(全盲) 못잖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좌절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저(低)시력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시기능연구소 김성수(사진), 임형택 교수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안과학회가 공동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안질환 역학조사’에 참여한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2만89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시력이 심할수록 자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실제 자살시도로 이어지는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4일 밝혔다.

김 교수팀은 교정시력을 기준으로 조사 대상자들을 ①1.0이상, ②0.63~0.8, ③0.25~0.5, ④0.2이하 등 네 그룹으로 나눈 다음 이들의 ‘자살생각’와 ‘자살시도’에 미치는 영향을 성별, 연령, 소득수준, 교육수준, 직업군, 거주 지역 등의 환경변수와 더불어 분석했다.

그 결과 교정시력 0.2 이하인 저시력자들이 1.0의 시력을 가진 비교 대상 군에 비해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했거나 실제 자살시도까지 한 경우가 각각 2배, 3.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 중 평소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 저시력자의 경우엔 ‘자살 생각’과 ‘자살 시도’률이 각각 최고 18배, 23배나 높았다.

김 교수는 “소득과 교육수준 및 체감 스트레스를 감안하더라도 교정시력 0.2이하의 저시력자의 삶의 질이 매우 낮은 것이 극단적인 선택을 부르는 주원인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중 치료를 위해 전문 안과 상담을 받은 이는 10%미만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저시력자들 중에서도 25% 미만만이 안과 상담을 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인보다 자살위험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시력자들이 사실상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국내 40세 이상 인구 중 교정시력 0.5 이하의 저시력자 비율은 4.1%로 보고돼 있다. 김 교수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녹내장과 황반변성, 당뇨망막증 등 시력장애와 실명을 부르는 안질환이 계속 증가하는 만큼 저시력자들의 정신건강도 안과 질환에 대한 진료 못잖게 배려하는 의료지원체계를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영국 안과학회지 ‘브리티시 저널 오브 옵쌀몰로지’(BJO)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