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적으로 여러 장기가 망가지는 희귀한 질환을 앓던 2살 아이가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4살 아이로부터 한번에 6개의 장기를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됐다.
뇌사 아이 부모의 숭고한 장기 기증이 꺼져 가던 어린 생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 것이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 이식 및 위장관재활팀 이명덕 교수를 비롯한 장혜경·김지일·김상일·박재명 교수팀은 ‘위장관 거짓막힘증’을 앓고 있던 신모(2)군에게 4세 뇌사아의 소화기계 장기 6개(간을 제외한 위·십이지장·췌장·비장·소장·대장 등)를 동시에 이식하는 ‘변형다장기이식수술’에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신군은 지난 5개월여간 여러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무사히 건강을 회복해 지난 1일 퇴원했다.
우리나라에서 다장기이식을 드물게 시행한 적이 있지만 간을 제외한 ‘변형다장기이식’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생 후 2개월 이상 뚜렷한 원인 없이 갑작스런 장 폐쇄 증상을 보인 신군은 여러 병원을 전전한 뒤에야 어렵사리 ‘위장관 거짓막힘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위장관 거짓막힘증’은 소장의 운동성이 약해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 및 통과시키지 못하는 희귀 질환이다. 증상은 나이 들수록 점점 진행해 장애 범위가 전체 위장관으로 확대되고 이로 인해 영양결핍 뿐만 아니라 정체된 창자 속 음식물의 부패와 세균번식, 감염으로 폐혈증 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 병이다.
신군에게 유일한 희망은 제 기능을 못하고 망가진 소화기계 장기를 떼어낸 후 정상적인 다른 사람의 장기로 대체 이식하는 수술밖에 없었다.
2013년부터 신군을 맡게 된 의료진은 검사 결과, 환아의 간 기능은 아직 정상이어서 간을 제외한 6개 장기, 즉 위 십이지장 췌장 비장 소장 대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간을 함께 이식하는 ‘다장기이식’에 비해 간을 제외한 ‘변형다장기이식’은 기술적 난이도가 가장 높은 이식술로 꼽힌다. 즉, 간을 떼내지 않고 그대로 남겨둬 이식 장기가 1개 적지만 연결하는 혈관 수가 훨씬 더 많고 보다 정밀한 세부 이식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면 외에 ‘장기 기증’의 어려움도 컸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규정상 각각의 장기를 타 기관과 나눠 촌각을 다투고 있는 여러 생명들과 나눠야하기 때문에 한 명의 생명을 위해 여러 장기를 이식한다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신군이 앓고있는 질환 자체가 워낙 흔치 않았고 2살 밖에 되지 않아 복강 크기에 딱 맞춰진 공여자 장기를 찾는 것은 어린이 장기기증자가 매우 적은 국내 실정으로 볼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난해 4월 신군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뇌사 기증자의 장기 상태가 원만치 못했고 신군 또한 갑작스런 고열 탓에 안타깝게 포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7개월 뒤 막연한 기다림 속에 또 한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교통 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4세의 숭고한 장기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신군과 신체 크기가 맞아 장기를 한 덩어리 채로 옮겨야 하는 다장기이식에 더없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됐다.
의료진은 곧바로 이식수술에 들어갔고, 총 13가지의 중요한 독립적 이식 수술 과정이 무려 18시간 30분간이나 진행됐다.
그리고 수술후 몇차례 고비가 더 찾아왔지만 무사히 넘겼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진균성간농양과 폐렴 등 감염증과 일반 고형 장기이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식편대숙주반응까지 겪었던 것. 하지만 이후 5개월 이상 병원 생활을 별탈 없이 견뎌내 의료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수술을 집도한 이명덕 교수는 “현재 하루 식사 필요량의 2/3 이상을 입으로 섭취하고 있으며 함께 이식된 췌장 기능도 좋아 혈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1년 후 장루 복원 등 마무리 수술을 아직 남겨 둔 상태이나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고 평가했다.
신군의 어머니(38)는 “아이가 수술 받을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면서 지냈는데 기적적으로 이식이 이뤄져 정말 기쁘다”며 의료진에 감사했다.
그는 “아이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오랜 수술을 견뎌내 정말 대견스럽다. 다시 한번 아이에게 소중한 장기를 기증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병마와 싸우는 다른 환아들도 우리 아이를 보고 용기를 얻어 이겨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교통사고 4세 뇌사아, 6개 장기 동시 기증…희귀질환 2살 아이 생명 살렸다
입력 2015-05-04 10:02 수정 2015-05-04 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