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의 경기를 ‘세기의 대결’이라고 명명했나. ‘졸전’중에서도 최악의 ‘졸전’이었다. 주먹이 격렬히 오가는 난타전 한 번 없는 지루한 공방전에 불과했다. 마지막 12라운드가 끝나자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3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경기에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는 평가다. 두 선수는 얼굴에 상처 하나 없이 링만 맴돌고 1초에 1억원을 벌었다.
◇약은 경기 운영으로 무패 이어간 메이웨더=메이웨더는 전형적인 아웃복서다. 철저한 방어를 기본으로 유효타를 차곡차곡 쌓아 승리를 거두는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몸의 무게 중심을 완전히 뒤에 둔 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파퀴아오가 다가가면 뒤로 물러섰다. 펀치를 맞으면 클러치로 상대 팔을 감쌌다. 대신 리치의 우세를 활용, 들어오는 파퀴아오 얼굴에 간간히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때렸다. 결국 메이웨더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채점 결과 한 명은 118-110, 나머지 두 명은 116-112로 메이웨더의 우세를 판정했다. 이로써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 챔피언인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의 세계복싱기구(WBO) 타이틀도 차지했다.
특히 48전 전승(26KO)으로 ‘무패 복서’ 기록을 이어갔다. 파퀴아오 전적은 57승(38KO) 2무 6패가 됐다. 메이웨더는 경기를 마친 뒤 “나는 계산적인 파이터인 반면 파퀴아오는 거친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화끈한 경기를 바랬던 팬과 관중을 뒤로한 채 아마추어 복싱처럼 철저한 유효타 위주의 경기 운영을 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파퀴아오도 간간히 전매특허인 속사포 펀치를 날렸다. 그러나 전혀 영양가 없는 주먹만 허공에 휘두르며 메이웨더의 역습에 말릴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2라운드 내내 링만 맴돌다 경기를 끝냈다. 파퀴아오는 “내가 이겼다. 메이웨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나는 그에게 여러 차례 펀치를 적중했다”고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변명이었다. AP통신에 따르면 메이웨더는 435차례 펀치를 날려 148개를 적중한 반면 파퀴아오는 429차례 주먹을 뻗어 81회 적중에 그쳤다.
◇“역대 최악의 매치”…돈벌이 위한 리턴매치 염두?=천문학적 대전료에 걸맞지 않은 경기에 대해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메이웨더와 파키아오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를 호령한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42·미국)는 자신의 트위터에 “복싱 팬들에게 미안합니다(Sorry boxing fans)”라고 썼다.
공격적 플레이에 점수를 더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977년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쓴 홍수환(65)은 “역대 타이틀전 가운데 가장 재미없는 경기였다. 두 선수에게 대전료(2700억원) 지급을 하면 안 된다”면서 “공격성에 더 점수를 줘야 한다. 이러다가 종합격투기 UFC에게 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두 선수가 돈벌이를 위한 재경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크게 불러 모았던 경기가 화끈한 장면 없이 끝나면서 재대결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메이웨더는 케이블채널 쇼타임과 한 경기 계약이 아직 남아 있다. 파퀴아오도 “두 명이 은퇴하기 전에 다시 경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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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 역대 최악의 매치”… 메이웨더·파퀴아오, 돈벌이 위한 리턴매치 염두?
입력 2015-05-03 17:12 수정 2015-05-03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