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만 송골송골 맺힌 36분의 졸전
메이웨더는 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벌인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세계복싱협회(WBA) 통합 웰터급 타이틀매치에서 파퀴아오를 상대로 심판 전원일치인 3대 0(118-110 116-112 116-112) 판정승을 거뒀다.
이로써 메이웨더는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5체급에서 거둔 48번째 승리(26KO)다. 8체급을 석권한 아시아 복싱의 자존심 파퀴아오는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통산 전적은 64전 57승(38KO) 2무 6패다.
난타전이 없는 밋밋한 승부였다. 두 선수는 라운드당 3분씩 12라운드를 모두 소화했지만 짜릿한 한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인파이터’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의 빈틈을 노려 쉴 새 없이 주먹을 퍼부었지만 치명타를 날리진 못했다. ‘아웃복서’ 메이웨더는 카운터펀치로 응수하면서 회피로 일관할 뿐이었다. 심판이 12라운드를 마치고 메이웨더의 손을 들어준 순간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1초당 대전료 1억2500만원의 가치?…“글쎄”
두 선수의 대결은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입장권과 중계권, 광고 비용이 치솟았다. 주심 수당은 2만5000달러, 파퀴아오의 팬츠에 붙은 광고는 225만 달러, 메이웨더의 마우스피스 가격은 2만5000달러다. 스폰서가 아닌 일반인 500명에게 판매한 입장권 가격은 7500달러다. 이 입장권의 암표 가격은 25만 달러로 치솟았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두 선수의 계체량 행사는 복싱 사상 처음으로 유료로 진행됐다.
대전료는 2억5000만 달러(약 2700억원). 복싱 사상 최고액이다. 메이웨더가 60% 수준인 1억5000만 달러를, 파퀴아오가 40% 수준인 1억 달러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두 선수는 12라운드까지 2160초를 모두 소화하면서 1초마다 1억2500만원씩을 벌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졸전으로 거액의 대전료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SNS에서는 “두 선수와 주최 측만 돈을 쓸어 담고 복싱계를 영원한 침체로 빠뜨린 경기” “이런 경기가 세기의 대결이면 복싱도 끝난 셈”이라는 악평이 나왔다.
“내가 버린 시간을 돌려줘”… 장외로 불똥
졸전의 불똥은 장외로 튀었다. 가장 먼저 불똥을 맞은 곳은 중계방송사다. 우리나라의 경우 길게 잡은 편성시간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서는 경기 전부터 “아침 11시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두 시간 동안 경기를 보지 못했다” “쇼가 아무리 즐거워도 이건 너무 길지 않은가. 중계방송사의 생색이 과하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는 낮 12시(한국시간)부터 싸울 예정이었지만 공은 한 시간 미뤄진 오후 1시쯤 울렸다. 우리나라 중계방송사 SBS는 오전 11시부터 중계방송을 편성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두 시간 동안 같은 발언을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시청자들은 36분짜리 경기를 보기 위해 두 시간을 허비했다.
미국 중계방송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미국 측은 시청 가구당 89.95달러(약 9만7400원)씩을 부과했다. 복싱 사상 최고액이다. 주최 측은 입장권 및 중계권 수입으로 430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거액의 스폰서십으로 초청을 받은 스포츠 및 할리우드 스타들도 은근하게 속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클 제이폭스, 덴젤 워싱턴, 전현직 ‘베트맨’ 마이클 키튼과 크리스찬 베일,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플레이어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팝스타 스팅과 저스틴 비버,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관중석에 나타났다. 이들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은 조소로 바뀌었다.
핵주먹 “노잼” 골든보이 “죄송” 혹평… 메이웨더만 인정
복싱의 전설들은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49)은 트위터에 “이걸 보겠다고 5년을 기다렸는데…”라고 짧게 적었다. 해시태그로는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애칭을 붙인 ‘#메이팩(#MayPac)’과 함께 ‘#전혀 감흥이 없었다(#underwhelmed)’고 적었다. 우리 네티즌이 ‘재미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노잼’과 비슷한 의미의 해시태그다.
화끈한 복싱으로 WBA·WBC·WBA와 함께 국제복싱연맹(IBF) 헤비급 타이틀까지 석권한 타이슨에게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때 ‘골든보이’로 불렸던 미들급 챔피언 출신 오스카 델라 호야(42·미국)는 트위터에 “복싱 팬들에게 미안하다(Sorry boxing fans)”고 사과했다. 복싱계 선배로서 사과하면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를 향해 독설을 날린 것이다.
세기의 대결을 인정한 선수는 승자인 메이웨더뿐이었다. 메이웨더는 경기를 마친 뒤 “나는 계산적으로, 파퀴아오는 거칠게 경기했다”고 말했다. 파퀴아오가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승리로 이어질만한 결정타는 자신에게 있었다는 자평이자 졸전 논란에 대한 반론이었다.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에게 여러 차례 펀치를 꽂았다. 승자는 나라고 생각한다. 메이웨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판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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