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꿈이 많았다. 조각가가 되고 싶었고 대학 교수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서울 선화예고를 나와 재수 끝에 서울대 조소과에 진학한 건 1983년. 대학을 졸업한 뒤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만났다.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서 만났다. 남자의 꿈은 목회자. 두 사람은 2년간 연애하다 91년 백년가약을 맺었고 남자는 강원도 영월에서 목회자의 삶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골에서의 삶이 길지는 않을 거야. 언젠가는 남편도 도시에서 목회를 할 테니까.’
그런데 남자는 94년 강원도 홍천으로 사역지를 옮긴 뒤 홍천에 계속 머물며 농촌목회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술가를 꿈꾸던 여자는 그렇게 평범한 ‘시골 사모’가 되었다.
여자가 작품 활동에 나선 건 2001년 지인으로부터 “너의 달란트를 썩히는 건 죄”라는 충고를 듣고서다. 여자는 그때부터 철이나 스테인리스로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2006년 서울 감리교신학대에서 십자가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연 뒤에는 십자가가 작품 활동의 주된 테마가 되었다.
여자는 홍천 동면감리교회 박순웅(53) 목사의 아내인 정혜례나(52) 사모다. 1일 동면감리교회를 찾아가 정 사모를 만났다. 그의 ‘십자가 사랑’에는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을까.
시골 사모의 십자가 이야기
동면감리교회는 한갓진 농촌에 위치한 평범한 시골 교회였다. 교회 마당 입구에는 순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고 마당 화단에는 팬지와 달리아가 피어있었다. 특이한 건 마당의 컨테이너 박스 옆에 있던 6.6㎡(약 2평) 크기의 낡은 천막이었다. 천막 안에는 망치 용접기 같은 투박한 도구들과 정 사모가 작품 활동에 사용하는 철과 스테인리스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정 사모는 “아침부터 밭일을 하느라 바빴다”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그가 남편과 함께 일구는 밭은 1만3223㎡(약 4000평). 부부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재배하고 있다.
“아이 네 명(1남 3녀)을 키우면서 홍천에 산 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하루하루 정말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농사일이 만만치 않은데다 평일 오후엔 교회 인근 초등학교, 중학교의 방과후학교에서 각각 미술과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과거에는 나무나 흙으로도 작품을 만들었지만 십자가 제작에 치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철이나 스테인리스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재료를 건조하는 데 품이 많이 드는 나무나 흙에 비해 철 등은 상대적으로 제작기간이 짧은 게 이점이다. 십자가는 바쁜 일상을 쪼개 틈틈이 만든다. 그가 그동안 만든 십자가는 100여점. 정 사모는 십자가 외에 기독교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도 가끔씩 제작한다.
“2006년 감신대 전시회 이후 십자가 제작을 의뢰하는 주문이 꾸준히 들어왔어요. 자연스럽게 십자가 만들기가 주된 작품 활동이 되었죠. 십자가를 만들다 보면 십자가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생명을 받았으면 고난도 받는다는 뜻의 ‘수생(受生)은 수난(受難)’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고, 고난을 통해 축복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실감하곤 합니다.”
정 사모는 개인전 9회를 포함해 지금까지 100회가 넘는 전시회를 가졌다. 정 사모는 “제작비가 만만찮기 때문에 작품 가격이 싸진 않다”며 “하지만 무턱대고 십자가를 만들어 팔진 않는다. 상대가 내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한다는 느낌을 줄 때만 주문에 응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강렬한 메시지 담긴 십자가 만들고 싶어”
정 사모의 십자가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담겨 있다. 예컨대 십자가 틀 속에 수많은 인간 군상을 배치한 작품들에서는 사람 형상 하나하나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의적인 그의 작품처럼 정 사모가 생각하는 십자가의 의미 역시 폭이 넓었다. 그는 “거짓된 자아를 버리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자는 메시지가 담긴 성물이 바로 십자가”라고 설명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의 불협화음 때문에 예수님이 매달린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십자가를 볼 때면 하나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지요. 창조주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는 여행이 인생이라면, 십자가는 저에게 그 방향을 가르쳐주는 도구입니다.”
2001년부터 15년째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정 사모 스스로 밝히듯 그를 ‘전업 작가’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자녀를 양육해야 했고 농사를 지어야 했으며 사모 역할에도 충실해야 했으니까. 정 사모는 이제부터라도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는 삶을 희망하고 있었다.
“철 같은 무거운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용접을 하다 화상을 당할 위험도 자주 있는 편이죠. 하지만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큰 환희를 느끼니 십자가 만들기를 그만둘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세상을 향해, 이 땅의 크리스천을 향해 진솔하면서 파워풀한 메시지를 전하는 십자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홍천=박지훈 기자
[십자가(9)] 시골 사모의 십자가 사랑…정혜례나 사모 이야기
입력 2015-05-03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