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마주쳐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고통의 심연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눈빛. 두 분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지독한 ‘생지옥’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8) 할머니가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해켄색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피해자인 두 유럽계 미국인 할머니를 만났다. 애니타 와이즈보드(92), 에델 카츠(92) 할머니는 각각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대구 출신인 이 할머니는 1944년 16세 때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던 일본인에 속아 대만으로 끌려가 가미카제(神風) 부대에서 2년간 몹쓸짓을 당했다.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전기 쇼크 등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독일 나치군이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숨어지내던 와이즈보드 할머니는 이듬해 3월 영국의 아동 탈출 지원 덕분에 오스트리아를 벗어날 수 있었다. 폴란드 부차츠의 한 마을에 살던 카츠 할머니는 1941년 독일군 총격에 쌍둥이 남동생을 잃고 남은 가족이 몇 년 동안 헛간과 들판에서 숨어살았다. 1944년 소련군이 독일군에 승리하면서 마을이 해방되자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종전 70년을 맞지만 가해국인 독일과 일본의 자세는 판이하다. 독일은 몇 번이고 사죄하며 빌리 브란트 전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대인 전쟁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 꿇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사과는커녕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앞에서는 재미 예술인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치유를 기원하며 무용 등 행위예술 공연을 했다.
이 할머니는 공연을 본 뒤 “일본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전쟁이 있는 곳에 위안부로 끌어다 놓았다. 저는 그런 아베 일본 총리를 그냥 두지 못한다”면서 “후손들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듣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와이즈보드 할머니는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학교에 가서 이 얘기가 앞으로 절대 잊혀지지 않도록 말해줘야 한다. 잊혀지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그들이 자행한 만행을 인정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만행이) 더 많이 얘기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면 무엇인가 다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위안부 할머니와 홀로코스트 할머니 만남… 눈만 마주쳐도 알 수 있었다
입력 2015-05-01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