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자리 연연하지 않지만 이름 석자 올랐다고 사퇴하는 건 자존심 용납 안해"

입력 2015-05-01 19:21
청와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성완종 리스트’에 본인 이름이 기재된 것에 대해 “혐의가 나온다면 당장이라도 (실장직을) 그만둘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스트에) 이름 석자가 올랐다고 해서 (사퇴하는 건) 제 자존심도 용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수사에는 얼마든지 응할 수 있지만 현재는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만큼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리 연연하지 않지만 사퇴는 안한다”=이 실장은 1일 취임 후 처음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닌데,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만 갖고 사퇴 여부를 말씀드리는 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나갈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조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는 (사퇴를) 못하겠지만, 만에 하나 잘못한 게 있다고 밝혀지면 당연히 그만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야당 의원들이 수사 공정성 문제를 언급하며 거듭 사퇴를 요구하자 “비서실장이라고 해서 검찰에서 조사를 못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직 대통령도 검찰이 조사한 적 있고, 현직 대통령의 아들과 형님도 조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 실장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안 지가 30년이 되는 사이”라며 “오래 안 사이이기 때문에 조언도 부탁해오고 했지만, 금전이 오가는 사이는 절대로 아니었다”고 금품수수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최근 1년간 140여 차례 통화한 사실에 대해서는 “저는 오는 전화는 다 받는 사람”이라며 “아마 90% 이상이 성 회장이 제게 건 전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어 차례 통화는 성 회장의 자살이 임박했을 때”라며 “기록에서 확인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실장은 지난해 국가정보원장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서울 도곡동의 한 커피숍에서 성 전 회장을 만났을 당시 “(성 전 회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걱정하는 얘기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성 전 회장이) 최근 경남기업 수사와 관련해 ‘자원외교비리 같은 건 없다, 억울하다’는 걸 여러 번 호소해 왔다”며 “검찰수사에 대해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이고, 그건 어렵다고 대답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리스트에 본인 이름이 나오자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고 “금전관계는 전혀 관계없다는 답변을 드렸다고”했다. 그는 대통령이 추가로 진위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통령 병명 공개 잘못됐다”=이 실장은 박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 이후 인두염과 위경련 증세로 치료 중인 사실을 청와대가 밝힌 것도 도마에 올랐다. 이 실장은 “결과적으로 시시콜콜한 병명까지 나간 것에 대해 저도 잘 된 보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그렇게 안 알려졌으면 그게 또 의혹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성 전 회장의 사면문제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이 의혹을 가진 것 같아 대통령이 발언하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운영위 회의 전 인사말을 통해 “비서실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내 이름이 진위 여부를 떠나 오르내리게 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금번 사건이 우리나라가 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회에 계류 중인 각종 개혁 법안과 경제 활성화 민생법안들이 다음주 끝나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 실장은 세월호 후속 대책과 관련해서는 “조속한 선체 인양, 추가적 진상 조사, 신속한 배·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야당이 출석을 요구했던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은 출석하지 않았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