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6시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 8층 복도에서 A씨(57·여)가 몸을 던졌다. CCTV에 찍히지 않도록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아파트의 주민도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인근에 사는데 이날 혼자 이 곳을 찾았다.
이 임대아파트에서 벌어진 ‘극단적 선택’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봄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되지 못한 80대 할머니 입주민이 투신했다. 같은 해 늦여름에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아들의 뒤를 따르겠다며 60대 여성이 뛰어내렸다. 9층과 12층에서 잇따라 사람이 투신한 동도 있고, 젊은이가 집안에서 죽음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주민들은 전체 9개 동 가운데 최소 4개 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수차례 목격했다. 주민 이모(58)씨는 “1995년 이 아파트가 생긴 후로 그렇게 숨진 사람이 50명쯤 된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전동휠체어를 탄 노인과 담배를 문 중년 남성들이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A씨 얘기를 꺼내자 “주기적으로 있는 일”이라거나 “별 일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궁지에 몰린 이의 극단적 선택은 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3년째 이 아파트에서 관리업무를 하고 있는 B씨는 “없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옆집 사람이 죽어도 시큰둥한 분위기”라고 했다. 경비원 C씨는 “여기서 일한 지 2년이 채 안 됐는데 직접 죽은 사람을 본 게 이번이 4번째”라며 “어느 집에서 냄새가 난다는 신고에 직접 찾아갔는데 20~30대 남성이 죽어 있던 장면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 조모(54·여)씨는 “부모와 살던 장애인 남성이 이웃과 사소한 문제로 다투자 홧김에 뛰어내린 적도 있다. 20년째 살고 있는데 최근 더 (자살이) 빈번해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A씨처럼 다른 동네에서 찾아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주민 김모(62)씨는 “단지 내 동별로 자살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가 어렵다. 멀리서 찾아와 몸을 던지는 사람도 꽤 있다”고 했다.
죽음은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인근 동네로 번져 간다. 지난 26일 강서구의 다른 임대아파트에서 장애인인 기초생활수급자 D씨(52)가 투신했다. 오랜 지병에 몸이 망가졌고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소방 당국은 이 아파트에서 지난 15일과 지난해 3월에도 각각 60대와 78세 남성이 ‘추락사’했다고 밝혔다.
임대아파트를 짓고 관리하는 SH공사(옛 서울시도시개발공사)를 통해서도 이런 비극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 확인된다. SH공사는 2011~2013년 서울의 임대아파트에서 모두 125명이 자살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으로 추정된다. A씨가 투신한 임대아파트는 전체 1500여가구 중 348가구가 장애인 가정이고, 270가구는 독거노인이다. 임대료는 월 4만6000원~5만5000원인데 이마저도 내기 어려운 주민이 많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 50%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영세민”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먹고 살기 힘들면 마음 기댈 곳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나빠지자 강서구는 2013년부터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자살예방 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초점이 좀 어긋났다. 임대아파트 인근 사회복지관에는 치매센터와 위기가정 상담소가 있다. 반면 전체 주민의 22.1%를 차지하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 어르신 주·야간 보호시설이 있지만 독거노인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을 위한 상담서비스 등은 제공되지 않는다.
복지관 관계자는 “예산 지원이 적어 복지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윤진 팀장은 “요즘처럼 날씨가 좋아지는 계절에 상대적 박탈감을 더 크게 느끼는 영세민 거주지에서 자살이 증가할 수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관련 예산을 확대해 심리 상담 등 적극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최예슬 기자 foryou@kmib.co.kr
[단독] “옆집 사람이 죽어도 시큰둥” 임대아파트의 비극
입력 2015-04-30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