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최모(73·여)씨는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됐다. 서울 성북구의 18평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했다. 남편이 전처와 얻은 아들이 충북 청주에 살고 있지만 왕래는 없었다. 2006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나서 건강이 나빠졌다.
이런 최씨에게 유일한 사회생활은 종교 활동이었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매년 부활절마다 직접 달걀을 삶아 이웃에 돌렸다. 외출이라곤 가끔 기도원에 가느라 1주일 정도 집을 비우는 게 전부였다. 주민들은 그를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최씨가 달라진 건 지난해 초부터였다. 종암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 김모씨가 지난해 2월 방문했을 때 최씨는 대장암 수술 이후 복용해야 하는 약을 먹지 않고 있었다. 김씨뿐 아니라 보건소 간호사, 독거노인관리사, 자원봉사자 등이 잇따라 찾았지만 방문을 거부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김씨는 이 아파트 부녀회장 이모(59·여)씨에게 최씨 안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최씨를 만난 게 이달 초였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고 몸이 아프다’고 했다”며 “최씨가 이번 부활절에는 달걀도 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가 보이지 않자 이씨는 23일부터 수차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닷새 뒤 옆집 주민이 ‘최씨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이씨를 불렀다. 심상치 않은 악취에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안방에 깔린 요 위에서 반듯이 누운 채 숨져 있는 최씨를 발견했다. 검안 결과는 대장암 합병증에 따른 사망이었다.
잘 정돈된 집안 곳곳에는 성경과 십자가, 성경 구절이 적힌 액자 등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우편물 10여통이 쌓인 우편함에는 기독교 단체에서 보낸 편지도 2통 있었다.
외롭게 살던 최씨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 경찰이 유일한 가족인 아들에게 사망 사실을 전했지만 그에게는 장례를 치를 권한이 없었다. 장례 절차를 밟으려면 부양의무자여야 하는데 아들은 주민등록상 최씨 남편의 자녀로만 등록돼 있다. 법적으로 남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지방에 사는 최씨 조카에게도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최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장례를 치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결국 최씨가 쓸쓸히 떠나게 됐다. 종암경찰서와 성북구청은 최씨를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하고 화장키로 했다.
전수민 심희정 기자 suminism@kmib.co.kr
[단독] 성경과 십자가만 남기고… 부활절 계란 할머니 고독사
입력 2015-04-30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