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만에 박근혜정부의 ‘원칙주의’ 외교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과의 밀월,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과거사 왜곡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압박하려던 전략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은 사상 최고 수준의 미·일 동맹을 구축하고 소원했던 중국과도 화해모드에 돌입했다. 이 사이 우리 정부는 대결 격화로 치닫는 동북아에서의 세계 양강 미·중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형국이다. 가장 중요한 외교적 지향점인 한·미 동맹의 수준이 답보 상태인 것도 문제다. 이런 문제점은 현 정부가 외교안보 전략의 ‘큰 그림’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전 정부 고위직을 지냈던 한 외교전문가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근혜정부는 장기적인 외교안보 밑그림을 그리기보다 ‘우리는 대외관계에서 이렇게는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 방법론을 먼저 앞세웠다”고 지적했다. “외교 중심축을 어떤 방향으로 설정할지 목표를 먼저 정해야 하는데 이를 생략하고 ‘이건 원칙이고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방법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런 원칙이 먼저 튀어나오니,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집착하게 됐다. 일본 정권의 과거사 반성이 없다고 대일 관계 전체를 소원하게 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교수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면서도 “우리 외교정책은 세계의 변화, 동북아의 변화, 미·중·일의 변화에 좀더 전방위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는데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진 교수는 “원칙을 중시하다보니 유연한 대응이 힘들어졌던 점도 많았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적극적으로 두 양강을 설득하고 우리 주도력으로 끌고 가는 능력은 부족했다”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의 한국 외교는 기존의 미국 중심·‘대중(對中)·대일 등거리’ 전략에서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 대일 원거리외교’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2013년 임기 첫 해에는 이 같은 외교안보 전략 변경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과거사 반성이 없이는 관계정상화는 없다”고 경고해왔고, 중국에는 “가까워진 만큼 북한 김정은 정권에 압박을 가해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별무소득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완강했던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를 다소 완화시켰지만, 일본은 미국과 더 밀착해 이른바 ‘미·일 신밀월 시대’를 열었다. 중국도 북한에 대한 견제자 역할을 하는 대신, 우리 정부에 한·미보다 한·중 관계에 더 집중하라는 간접 압박을 가해온다. 미국은 한국정부의 ‘중국 밀착·일본 원거리’ 정책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익명을 원한 한 외교 전문가는 “우리 외교정책 방향이 일본처럼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완벽하게 호응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도 중시하는, 지금의 미·중 사이의 균형정책으로 갈 건지 결정해야할 시기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국면과 사안에 따른 단기적 국가이익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우리 외교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긍정적인’ 방법론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갈길잃은 한국외교, 2년여만에 한계 드러내는 박근혜정부 원칙주의 외교
입력 2015-04-30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