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저축성수신 금리가 연 1.92%를 기록했다. 1억원을 1년 동안 넣어놔도 세금 15%를 제외하면 붙는 이자는 163만2000원에 그친다는 뜻이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이 제외되는 저축성수신의 금리가 1%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 예금주들은 섣불리 돈을 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3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저축성수신 금리는 연 1.92%를 기록했다. 전월보다 0.12%하락한 것으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6년 이후 사상 최저치다.
은행 예·적금은 전통적으로 원금손실의 위험을 꺼리는 보수적인 고객들이 선호하던 투자처였다. 그러나 기준금리 하락으로 인해 예금 이자율이 극도로 낮아지자 다른 투자처를 물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위험 중수익을 표방하는 주가연계증권(ELS)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분기 ELS 발행액은 총 20조2000억원으로 이전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 3분기 16조2000억원 보다 24%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조9000억원에 비해서는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장기성 예금 대부분은 은행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432조5000억원 규모였던 장기성 예금은 올해 1월 421조7000억원으로 11조원 감소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거의 0%대라 은행에 돈을 묵히는 행위는 이자를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익 창출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다. 이자를 기대할 수 없으면 돈을 빼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요즘 예금주들은 비상식에 지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라린 기억 탓에 예금주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2007년 펀드 열풍과 함께 주식형 펀드 규모가 3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반토막 수준의 손실을 겪은 투자자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털끝만큼의 손실도 감수하기 싫어하는 극보수 성향의 투자자가 양산됐다는 논리다.
은행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적금을 투자 개념이 아닌 보관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등장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도 예·적금에 가입하는 고객도 이자에는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은행은 예·적금을 유치하면서 연계 상품을 판매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고객은 이자 소득을 바라기보다는 원금 손실 없이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은 최근 일제히 수신금리를 인하했다. 이들 은행은 1년 만기 정기 예금 금리를 1.40~1.60%로 책정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1.75%보다 낮은 수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고객들로서는 은행 외에 자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사상 첫 1%대 예금금리
입력 2015-04-29 20:34